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偏頭痛 편두통의 탄생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by 에이치 H

편두통 없는 세상

나에게는 두통만 있지 편두통은 없었다.

그냥 종종 머리가 아플 뿐이지 편두통이라는 것은 없다.

주위에서 편두통이 어떻고 저떻고 해도 그냥 지나가는 말일뿐이다.



편두통의 탄생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가끔 느끼는 통증이 혹시 편두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편두통은 아마 한쪽만 아픈 증상이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온 머리통이 균일하게 전체적으로 같은 강도로 아픈 것이 아니라 한쪽이 주로 아픈 것 같기도 하다.


편두통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오니, 그 내용에 대하여 알아보게 되고, 내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습관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적포도주가 편두통 유발 요인으로 유명하고, 그밖에 초콜릿, 치즈, 감귤류, 튀긴 지방질음식이 그 원인음식이라고 한다. 전구증상(premonitory symptom)으로는 피로감, 졸림, 무기력, 하품, 집중력저하, 목이 뻣뻣함, 감정의 예민, 식욕부진, 갈증, 음식에 대한 욕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술은 거의 안 먹어도 그 밖의 유발요인으로 나열된 것들은 가끔 먹는데, 그게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증상은 내 몸 상태를 나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편두통이어서 피로하고, 졸리고, 무기력하고... 그랬구나 하고 과거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수정해야 할 정보도 등장한다.

"편두통에는 무조짐 편두통과 조짐 편두통이 있으며, 무조짐 면두통은 두통 2~48시간 전에 오고, 조짐 편두통은 두통직전 또는 두통시에 일어난다"


나는 처음에 두통 중에 편두통과 전두통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편두통은 주로 본격적인 두통이 오기 전에 오는 증상으로 지식백과에 써져 있으므로, 이제 나의 편두통에 대한 지식은 수정되어 저장되고 미래에는 이를 바탕으로 편두통을 해석하게 될 것이다.


또한, 편두통은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므로, 나의 가족들이 그랬는지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이 과연 편두통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하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만약 초콜릿 등을 앞으로도 먹고, 게다가 우리 부모님이 자신들은 그게 편두통인지 몰랐지만 편두통을 겪었다면 미래의 나에게도 편두통이 더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편두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 '편두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지식을 찾음으로써, 그동안은 없었던 편두통과 관련된 과거와 미래와 주변 관계가 인식되고 해석된다.


또한, 남들과 이야기할 때 혹시 두통이나 편두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편두통을 직접 경험해 봤다고 한 마디 걸칠 수 있고 편두통에 대한 이런저런 지식을 '경험자'로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머리가 아픔은 변함이 없는데, 나에게 편두통이라는 생각과 말이 들어옴으로써, 내 주변과 과거와 미래가 새로이 해석되고 창조된다.


이른바 偏頭痛편두통의 탄생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편두통인지 아닌 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 거 같을 뿐이다.


이른바 '내'가 세상과 대상을 드러내는 방식

작년에 처음 깨달음이나 견성 등에 대한 여러 유튜브 강의를 들을 때,

"이 세상이 환상이다"

"태어난 것도 착각이다"

"태어남이 없는 데 죽음은 어디 있겠는가?" 등등의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전에도 가끔 부담 없이 들었던 말이고 참 생각해 볼만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벼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그 말들을 꼭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이해도 잘 안 되는 즉, 하루는 이해가 될 듯하다가 그다음 날은 전혀 안 받아들여지고 그냥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저 말을 하는 사람은 과연 알고나 지껄이는 말일까 생계수단으로 하는 말일까 하는 반발심도 올라왔다.

그런 이해되지 않고 의심이 생기는 말을 담은 유튜브를 반복 반복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또 들으니, 나중에는 속이 울렁거리고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마치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갑자기 쯔양이 먹는 양만큼 음식을 내 입에 강제 투입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은 계속 변할 수 있겠지만, "태어남도 생각의 일이다" 등의 말은 지금은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신생아라고 하는 단백질 덩어리가 엄마의 자궁이라고 불리는 구조에서 빠져나오는 현상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내 앞에 있는 가족이나 직장동료가 허깨비라는 말이 아니다.


그 단백질 덩어리는 똥에 섞인 대장균과 달리 내가 보호해야 할 내 자식이고,

그 단백질 덩어리가 나오던 집은 아내의 여성의 자궁이라고 하며,

그 자식의 경계는 위에 구멍이 몇 개 난 공 같은 것, 가운데 네모난 박스 같은 것, 그 박스에 찢어진 가지 같은 것이 5개 달리 작대기 4개가 붙어있는 것으로 정의되며,

그 가지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라고 하는데, 5개가 아니면 좀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 자식이 공 같은 부분부터 나오면 건강한 것이고, 다리라고 불리는 작대기부터 거꾸로 나오면 위험한 것이고,

이 아이는 아마 앞으로 나와 부인을 닮을 것이고,

나는 이 아이를 위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고,

나의 과거의 미숙함이나 죄는 반성할 것이고.... 등등등


이런 생각들이 결국 그 단백질 덩어리와 그 관계 등을 규정한다는 면에서

그런 생각이 없으면 그 단백질 덩어리는 대장균이나 발톱의 때와 아마도 같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태어남도 생각의 일이라고 하는 것 같다.




만약 그 단백질 덩어리가 우리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누구나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면,

우리의 생각과 무관하게 그건 늘 보호와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거북한 표현들이지만,

그 단백질 덩어리를 어떤 경우는 어미가 강제로 자궁에서 제거(낙태) 하기도 하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성별을 확인하고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신생아에 대한 생각은 병아리가 수컷으로 감별되면 분쇄기로 투입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경우 하나의 인간이 태어나고 그런 개념이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는 자식에 대한 생각이 단지 생각의 일일 뿐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이는 마치 양자역학에서 관찰행위 여부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창조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최근의 미니시리즈 중에 나온 대사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낫겠는가?"에 어렵지 않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른바 '나(我)'가 탄생한다.

세상의 이른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온갖 우리가 가진 의도적, 비의도적, 창의적, 전승적인 개념이 들러붙어 형성된 생각에 의한 것으로 그렇게 규정되는 것이므로,

태어남도 생각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고, 내 앞의 사람도 환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생각에 의하여 편두통이 탄생하듯,

우리가 이미 존재하는 세상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과 세상도 생각에 의하여 탄생하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이미 존재하는 어떤 세상에 들어온 것이 맞기는 하지만, 그 어떤 세상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세상은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탄생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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