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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들

악순환의 고리를 조금 가늘게 만들기 위하여

by 에이치 H

이 글은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어른에 의해 생명이 빼앗긴 아이들

오늘도 인터넷 신문기사에는 어른들에 의해 저질러진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하나하나 읽고 있기가 쉽지 않다.


8세 여아가 고모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
4세 남아가 모친과 그의 남자친구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
6세 여아가 부친의 폭행으로 사망한 사건
16세 장애여아가 부모의 방치로 사망한 사건
3세 여아가 미혼모와 그 지인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
5세 남아가 모친, 의붓아버지, 의붓형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


이들 고모, 그녀의 남자친구, 모친, 부친, 부모, 미혼모, 지인, 의붓아버지, 의붓형 등은 용서받기 힘든 이들이다. '사망'이라는 결정적 범죄로 밖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범죄 피해자인 그 아이들은 수많은 시간 동안 학대와 방치와 폭력을 무기력하게 당하며 견디어 오다, 살아남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흰 수건 던져줄 코치도 없어서, 심판이 KO를 선언할 때까지 스스로 버틸 수밖에 없는 사각링의 코너에 그로기 상태로 몰려서, 헤비급 선수가 날리는 펀치를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는 라이트급 선수처럼, 어쩌면 빨리 KO 선언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어른들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그러한 비참함이 자신들의 잘못과 부족함에 기인한 것으로 알고, 자책하며 마지막을 맞이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는 이다.



살아남은 아이들

그러나 기적적으로 그 어린아이들이 그러한 무자비한 방치와 학대와 폭력을 견디어 내고 살아남았다면,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그들 중 일부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보통의 평균적인 사람들처럼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아마 그렇게 되기까지 운이 좋게 도움을 줄 주변사람이나 본보기가 될만한 사람을 만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어린 시절의 신적 상처를 가지고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사회에서 큰 문제 안 일으키고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박수가 아니라, 인간적인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일이 어떤 빈도로 일어날 수 있을까? 에 생각이 이르면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진다.

살아남은 아이도 육체는 성장하고 정신도 변화하여 언제 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 사회도 그를 어른으로 대접해 줄 것이다. 어른으로 대접해 준다는 말은 교육이나 보살핌 대신 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냥 놔둔다는 말과 어떤 면에서는 등치이다.


주변사람이나 사회의 지원이나 도움 없이도 아이들 중 극히 일부는 초인적인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외부의 도움이나 심리적 지원 없이 그렇게 자라기를 기대하고 어떤 모범사례를 제시하며 너는 왜 그렇지 못하느냐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자책과 무력감을 심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상당수는 어떤 특별한 계기나 사회의 관심이나 주변의 도움 등이 없다면, 성인이 되기도 전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기를 거의 방어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 막막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그 기억이 없었던 듯 생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울 것이다. 오히려 주변에는 이들을 도와주려는 이들보다 이들의 궁박과 무기력과 공격성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훨씬 많이 서성일 것이다.


그래서, 그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행히 방치과 학대와 폭력에서 용케 살아남았다고 해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금 더 폭력적이 되거나 아예 무기력하게 방 안에 틀어박힐 개연성이 상당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이성을 만나거나 결혼을 하게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들도 자신의 자식을 잘 키우고 좋은 경험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간절함이 클수록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깨닫고 무력감과 좌절감도 비례하여 커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고, 그런 보살핌을 겪어보지도 못한 그들만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악순환의 다음 고리가 될지도 모른다.




즉, 지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어른들은 어쩌면 우리가 구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살아남은 아이들 인지도 모른다.



유가족과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하여

그렇다고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당한 유가족과 그 지인들에게 그 범죄자들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이해하라거나 용서하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혹시 이글이 그렇게 비칠까 하는 우려가 있어 글을 쓰기가 망설여진다고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종교적 신념상 자진(自盡)은 나쁜 행위이고 절대자에게 벌 받을 행위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해도, 자진한 가족의 유가족에게 "자진은 나쁜 행위이며 벌을 받을 행위"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자신은 진리라고 생각해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를 함부로 내뱉는 것은 단지 그 상대에게 상처만 주는 행위일 뿐이고, 그러한 진리 전파는 폭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끔찍한 사건의 유가족 스스로 그럴 수는 있지 않겠는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사건이 벌어져도 그 전후사정을 알면 화가 좀 누그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듯이, 유가족들에게 우연한 계기에라도 살아남았으나 산 것이 아니었던 그 살아남은 아이들이 견뎌온 어린 시절을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가족의 상처가 더 깊어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는 있지 않을까?


또한, 그 살아남은 아이들을 단죄해야 할 법 집행자가 아니라, 단죄와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는 교화와 사회화와 나아가 사회적 치유를 담당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살아남은 아이들의 잔인함 뒤에 숨은 배경을 살펴야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조금이나마 가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조금은 가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글은 수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고, 유가족이나 살아남은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는 내용이 있어 조심스럽다.


먼저, 범죄 피해자인 유가족에게는 그들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를 위하여 그 살아남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는 지금은 어른이 된 그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경의를 표한다.


또한, 살아남았으나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학대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사회의 구조적인 도움과 더불어, 결국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으면 한다.





위에서 범죄케이스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의붓아버지', '의붓오빠', '미혼모' 등의 용어 역시 사회적 편견을 유발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자료 그대로 사용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또한, 위에서 열거한 사건들은 우선 이 글을 보게 될 한국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고서 볼 수 있도록 외국 사건으로 선택하여 나열하였다는 점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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