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한 세 멤버(어머니와 아들 둘) 7박 8일 크루즈 여행
알래스카행 크루즈선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워싱톤주 최남단 밴쿠버시를 출발해 시애틀 항으로 이동했다. 캐나다의 미항 밴쿠버시와 똑같은 철자와 이름을 가진 도시가 워싱톤주 최남단에도 있다. 밴쿠버 워싱톤에서 I-5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약 3시간가량 부지런히 운전하면 시애틀에 도착한다. 안 막힐 경우에 말이다. 대략 서울-대구 정도 거리 보면 되겠다. 시내에 들어서니 시애틀의 상징인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 우리를 반긴다.
아! 시애틀이다. 비 많고 조용한 항구도시에서 최근 들어 번잡하고 큰 도시로 자라고 있는 시애틀. 조금은 어수선 해졌으나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면 되니 어떤 초행길도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녀'의 지시대로 가다 보니 저기 크루즈가 보인다. 오! 크루즈. 내비게이션이 세상 똑똑하지만, 마지막 디테일에는 좀 약해서 주차장 찾는데 살짝 혼란이 있었지만 작은 팻말이 있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조금만 더 크게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비행기보다는 덜 힘들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복잡한 승선 체크인을 마치고 바다 위의 호텔로 온 보딩 한다. 난생처음 크루즈에 입장하는 순간이다. 여행의 종결판이라는 크루즈 여행! '서울 촌사람' 출세했다. 나중에 시니어가 되면 하려던 프로그램인데 어쩌다 보니 좀 당겨졌다. 승선하는 이 순간이 나름 '역사적 찰나'다.
객실은 6080호. 6층 80호, 수이트룸! 조금 비싼 방이다. 크루즈는 호텔을 퍼다가 배 위에 올려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다만, 선박이라는 구조적 특성상 천정이 낮다. 그래도 배 위에 이렇게 럭셔리한 방이 있다니 좋다. 화장실도 아주 넓고 깨끗하고 좋다. 대만족의 연속이다. 5층부터 상부 객실들은 널찍한 베란다가 바다를 향해 뜨앗~열려있다. 그래서 여기가 비싼 방이지. 뷰 있는 호텔 방만해도 감탄인데, 달리는 배에서 이런 베란다와 비치 의자라니... 내게는 이 베란다가 객실의 하이라이트다.
새벽부터 집에서 서둘러 출발해서 승선까지 마치니 바야흐로 점심 식사시간이다. 출항 전에는 9층 뷔페식당만 열어 있으니 승선객 들은 식사를 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처음으로 올라간 9층에는 뷔페식당, 수영장 등 앞으로 먹고 놀 거리가 그득하다. 9층이 광장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된다. 하하하. 사람이 붐비는 관계로 손에 잡히는 것들 몇 개 가져다 요기를 한다.
9층 선미에 옥외 씨뷰 풀(Sea-view Pool)이 있다. 펄럭이는 깃발은 네덜란드 국기이다. 이 배는 네덜란드 국적 배이며, 이 덩치 큰 녀석의 이름은 유로담(Eurodam)이다. 2008에 건조된 배이고 최근에 내부 리모델링을 한듯하며 200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는 대규모 크루즈선이다. 우리는 유로담과 함께 7일간 알래스카를 다녀오게 된다. 멋지다. 9층 투어는 계속된다. 배 중앙 부분에는 풀이 또 하나 있다. 아이들 사용 가능 수영장인지라 꽤나 소란스럽다. 지붕이 개폐식이라 닫히면 실내수영장이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용 가능하다. 여기가 9층의 중앙광장 쯤된다.
식사 후 오후 2시 쯤되니 비상훈련을 전체 승객 대상으로 실시한다. 모두가 3층 갑판에 모여 비상시 탑승할 구명정과 탑승장소를 확인한다. 우리는 어영부영 내려가 섰는데 우연의 일치로 우리의 비상시 집합지역인 10번 구역에 정확히 맞게 섰다. 그러고 보니 발급된 탑승카드에 어셈블리 스테이션 10번이라고 쓰여 있었네. 우리는 비상시 저 빨간 10번 배를 타야 하는 것으로 교육받는다. 노약자나 장애인 등 누구도 예외 없이 참여한 비상훈련이었고, 모두 모아놓고 보니 나이 드신 서양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시니어들도 많았다. 평균 연령 엄청 높다. 훈련이 끝나니 모두 해산한다. 웅성웅성 각자 방으로.
출항 준비를 마친 거대한 배는 7박 8일 간 알래스카로의 여정을 떠난다. 호수 같은 시애틀 앞바다에 부딪친 오후 햇살들이 평화롭다. 9층 수영장 옆에는 탁구대가 2개 있다. 달리는 배 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탁구를 칠 수 있다. 나름 독특한 경험이다. 팔순 어머니 탁구 실력은 현정화 빰치신다. 폼 좋으시다. 탁구대 옆에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하는 풍경이 평화롭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역시 탁구는 중국이 최고야!..."
저녁식사는 3층에 있는 '더 다이닝룸'이라는 레스토랑에 늦은 시간 8시 예약을 하고 먹었다. 예약 베이스의 식당 더 다이닝 룸은 웨이터들의 서비스를 받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식사는 스타터부터 메인 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코스로 제공된다. 각 코스별 3~4개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어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메뉴를 주문해서 골고루 먹어보는 것을 즐긴다. 번잡스러운 뷔페보다는 이곳이 조용히 식사하는 것이 더 좋다. 앞으로 디너는 여기서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매일 메뉴가 바뀌므로 아주 '땡큐'다.
식사하는 동안 창 밖은 바다가 넘실거린다. 이 식당에는 드레스 코드가 있다. 되도록이면 점잖게 하고 오면 좋다. 캐주얼 정장부터 턱시도까지 스타일의 스펙트럼이 넓다. 반바지에 슬리퍼나 방금 조깅에서 돌아온 듯한 복장만 아니면 된다. 점쟎게 열심히 맛있게 디너 정찬을 즐기고 나니 늦은 밤이다. 일찍부터 서둘러 움직인 터라 피곤하다. 방으로 돌아와 눕자마자 여정 첫날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