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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 저기 Nov 23. 2021

이 크기면 충분해

일상 디자인 스몰 토크 2

요즘 들어 늦은 밤 TV에서는 환경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을 자주 방영한다. 빈도수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환경 문제가 점점 다급 해지는 모양이다. 작년 54일간의 전례 없는 장마, 코로나19 전 세계 대유행, 미서부 대규모 산불... 굳이 녹아내리는 빙하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파괴된 환경이 되돌려주는 신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몇 년 전 크루즈를 타고 알래스카에 녹아내린 빙하 앞에서 신기해하며 사진 촬영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괜히 부끄러워진다.


뭐라도 해야 한다 싶은데 어찌해야 하나... '갑자기' 텀블러를 챙기고, 카페에서는 빨대를 받지 않고 그냥 마신다. 비닐봉지를 천 가방으로 대치하고 먹고 난 용기는 깨끗이 씻어 재활용 분류를 한다. 차량도 바꾸는 김에 화석연료를 덜 쓰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었다. 1인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심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갈증은 남아 있다. 계속되는 생각...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환경과 관련된 생각이 많아지던 어느 날  근무지 주변 오래된 식당에서 만난 테이블의 작은 종이 한 장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 무척 인상적이다. 보통 식당에 가면 A4용지 크기 되는 종이 깔개가 테이블에 놓여 있다. 위생과 품격을 동시에 만족시켜 드리겠다는 식당 주최 측의 의지가 감사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다지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식당은 수저에 입 닫는 부분만 위생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명함만 한 크기의 종이 깔개가 놓여 있다. 새로운 경험이다. 많은 식당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소담한 종이 깔개는 처음인 듯하다. 무척 사소한 경험이나 내게는 가볍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작은 종이 깔개가 주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이 작은 종이 테이블 매트는 디자인이 가져야 할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우선 그 형태는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는 작은 크기여서 창의적이다. 재료를 10% 이하로 아꼈으니 경제적이며, 궁극적으로 쓰레기를 줄여 친환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으니 가치지향적이다. 이렇게 우리는 디자인적인 사고를 통해 사소한 행위로도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거창한 디자인 프로젝트의 성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디자인 수준은 향상된다. 거기에 더하여 이렇게 일상에서 만나는 삶의 문제들을 개선하는 행동이 더해지면 우리 사회를 더더욱 이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소위, 미니멀리즘이라는 디자인 사조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학문이 아닌 상식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 이니까. 그렇다. 수저의 위생이 문제라면,  정도 크기면 충분하다.  정도 크기면 기존의 깔개를 20 정도는 만들겠다. 종이를 아낄  있겠다. 쓰레기를 줄일  있겠다. 그동안 우리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허용해 왔다. 풍족히 쓰고 버리는 것이 나의 넉넉함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했다. 알뜰하게 규모를 만들면 소위 '쪼존함'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렇게 마음껏 쓰고 버리는 습관이 몸에  우리에게  작은 종이  장이 보내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커서 좋은 것이 무엇인가?


디자인은 우리 일상의 문제를 좀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다. 디자인은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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