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처음이야! 멕시코시티 여행
2019 여름 미국행의 마지막 일정인 멕시코시티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오늘은 멕시코로 이동하기 위해 종일 공항과 비행기에서 보내야 한다. 포틀랜드에서 국내선 항공을 타고 LA로 가서 멕시코행 국제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세 군데의 공항을 방문해야 하는 ‘공항 데이’다. 제일 첫 공항은 출발지인 포틀랜드 공항(PDX)이다. 피 디 엑스~ 무슨 약이나 스포츠 브랜드 이름 같이 어감이 착착 입에 붙는다. 이 공항은 포틀랜드라는 도시의 명성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느낌이다. 국제공항이라기보다는 로컬 공항 같다. 또한 공항의 분위기는 매우 미국답지 않다. 오히려 유럽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그 이유는 공항에 문화적 감성이 많이 배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벽에 지역 미술작가들의 전시회도 많이 하고 미술작품들 이용한 인테리어도 소프트한 감성을 전달한다. 아무튼 이 포틀랜드란 도시는 '묘한(Weird)' 구석이 있다.
포틀랜드시는 본인들의 정체성이 오묘하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도시 곳곳에 '포틀랜드의 오묘함 지키기(Keep Porland Weird)'라는 슬로건이 많이 보인다. 남들과 다른 자신들만의 이상한 개성을 사랑하는 이 도시가 무척 매력적이라는 사실 만은 분명하다. 이런 야릇한 감성은 독특한 시각문화를 만들었다. 소위 '킨포크(Kinfork)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포틀랜드시에 이웃으로 살던 아티스트나 작가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과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KINFORK'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유래한 문화적 코드가 소위 킨포크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웬만한 카페에 가면 한두 권쯤은 놓여 있으니 보시기 바란다. 더 자세한 사전적 의미와 정보는 구글링을 부탁한다. 이 스타일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광풍처럼 몰려왔다. 빈티지스럽거나 자연주의적인 스타일의 공간들이나 분위기가 대표적인 현상이다. 사실 우리의 킨포크 문화는 '일부러 거칠고 자연스러워지기'의 경향이 뚜렷하다.
PDX의 특이한 광경 하나는 탑승 게이트로 가는 통로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다. 공항 안에 극장이 있다니! 이 극장은 포틀랜드에 있는 비영리재단 극장이 운영한다고 한다. 역시 묘한 매력의 포틀랜드다. 미국 내에서 가장 여유로운 문화를 가진 매력 넘치는 도시답다. 공항에서 보는 창 밖은 언제 봐도 설렌다. 어디론가 날아갈 채비를 하는 분주한 비행기들 때문일 거다. 창 밖에 알래스카 에어라인 항공기가 보였다. 뒷날개에 알래스카 맨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일세 알래스카 맨! 여기에서 나는 디자이너니까 한마디 하자. 미국의 그래픽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은 매우 구상적(Realistic)이다. 상징적 추상 이미지보다는 직설적인 도해를 사용한다. 하와이안 에어라인은 머리에 꽃 꽂은 하와이 여인이 상징 심벌이다. 실용적이고 다문화적인 환경이 이런 다이렉트한 시각 환경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캘리포니아 주로 오니 워싱톤 주에 있던 뾰족하고 키가 큰 침엽수는 사라지고 야자수 나무들이 창밖에 보인다. 나무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포틀랜드 공항에서는 수수했던 반면, LA공항(LAX)에는 멋쟁이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흑백 TV 보다가 총천연색 4K 레티나 디스플레이 보는 기분이다. 연중 날씨 좋고 풍요로운 '천사의 도시라'라는 명성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공항의 분위기는 아주 편안하고 자유롭다.
멕시코 항공으로 갈아타고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로 출발한다. 요즈음 미주지역 항공사들은 기내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국내선 델타에서는 한 시간 무료이고 그 이후 사용하려면 결재를 해야 한다. 한 시간 와이파이를 쓰다 끊기면, 안쓸 수가 없다. 아, 자본주의 기업들의 상술이란... 반면 멕시코 항공은 시간제한없이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 비행 도중에 텍스팅과 간단한 정보검색 등을 할 수 있다. 세상 진짜 좋아졌다. 기내에서 와이파이가 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지상의 사람들과 교신을 하다니! 하하하. 키아느 리브스가 주연했던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난다. 연결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결국 온 것이다. 기내에서 나눠주는 샌드위치 먹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한다. 창 밖 아래로 보이는 멕시코시티는 산에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형 대지이고 도시구획이 바둑판처럼 잘 되어있다. 드디어 남미지역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멕시코시티 공항(MEX)을 나오니 약간의 매연이 코를 찔렀다. 이렇게 코를 자극한다는 것은 사실은 대단히 매연이 심하다는 얘기 아닌가. 느껴지는 기온은 아주 적정하다. 적도 쪽으로 내려 왔으니 더울 줄 알았는데 괜챦다. 기후와 날씨는 위도보다는 고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250미터 고원지대에 있다. 백두산 정상이 2,744이니 거의 같다. 공항 터미널을 벗어나다 보면, 어느 공항 주변에나 광고판이 많다. 멕시코시티 공항도 마찬가지였고 그중에 기아자동차 광고가 있었다. 멕시코에서 기아 차량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480%의 성장을 보였다고 한다. 정의선 씨 파이팅!
멕시코라는 도시의 치안 우려 때문에 중요한 일정은 가이드를 예약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다니는 짬짜면 같은 '반반 여행'을 계획했다. 아무래도 초행 남미를 우리끼리 하기에는 부담이 좀 있었다. 저녁 7시 즈음 도착한 우리는 가이드의 픽업으로 스타렉스 차량을 타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식당의 이름은 '명동관'이다. 이 식당 메뉴판에 나온 메뉴의 개수는 95가지다. 김밥천국 메뉴판을 우습게 넘기는 숫자다. 한식과 중식을 하는데 그 정도 메뉴 종류가 진짜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메뉴판의 일련번호는 95까지 있다. 한국음식으로 긴 여정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는 순간, 그 어느 곳이라도 한국이 된다.
식사 후 드디어 제네바 호텔(GENEVE HOTEL)에 도착한다. 호텔이 엄청나게 고풍스럽다. 지은 지 107년 정도 되었다나? 대리석과 나무로 꾸며진 호텔의 품격이 하늘을 찌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듯 로비에는 호텔의 오래된 기념품들과 기록이 전시되어있다. 스페인어로만 쓰여 있어서 읽진 못했다. 멕시코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언어나 정보의 소통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갔다. 그런데 영어로 된 정보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전시품 설명을 모두 스페인어로만 써 놓았다. 번역 앱에 의존해서 얻은 정보는 이렇다. 이 곳이 말론 브란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등이 묵었던 곳이라 하니 자랑할 만도 하겠다. 앞으로 나흘간 우리의 홈 스위트 홈은 여기다. 방은 오래된 티가 팍팍 나지만, 고풍스러운 가구와 분위기가 멋지다. 욕실 문도 나무라서 물이 많이 튀는 부분들은 썩어있다. 그래도 멋지다. 이제는 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