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처음이야! 멕시코시티 여행
네 번째 날의 여정은 피라미드로 유명한 멕시코시티 외곽지역의 역사 유적지 테오티우아칸을 가보는 것이다. 이곳은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어 가이드와 전세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이동 여정 중에 보이는 시 외곽 마을들의 색상이 알록달록한 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이들의 낙천적인 심성이 화려한 유채색 페인트에 묻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꾸며 놓은 언덕마을들이 많이 있다. 부산의 감천마을, 통영의 동피랑, 대전의 대동 벽화마을 등... 차이점은 여기는 자연발생이고 우리는 인위적 발생이라는 것이 있겠다.
대략 1시간 정도 이동하면 '메히코(멕시코의 현지 사운드는 메히코로 들린다) 피라미드'를 만난다. 나는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좌우지간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런데 이곳 멕시코에도 여러 군데 피라미드가 남아있다. 고대 문명 지역에서 좀 더 하늘 가까이에서 신과 가까워지려는 욕망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자 하는 권력욕의 부산물로 이러한 구체적 조형 상징을 만들었지 싶다. 해발 2,300m에 위치하고 있는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떼오띠우아깐, teotihuacan)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유적이다. 이곳은 전설 속 신들의 도시, 죽은 자가 신이 되는 곳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멕시코시티 자체가 고원지대이다.
'해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고 이 두 피라미드를 지나는 중앙통로를 '죽은 자의 길'이라 부른다. 예전에 제물이 될 사람이 약 1km 정도 되는 그 길을 환호 받으며 걸어와 제단에서 살아있는 채로 심장을 꺼내어 신께 바쳤다고 한다. 그것도 심장을 아무나 바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죽공을 이용해 축구 비슷한 게임을 하고, 거기서 이긴 자가 그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는 의식은 무척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이해가 될랑 말랑한다.
피라미드에 오르면 숨이 차오른다. 정상에 서는 순간 신들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진다. 웅장하고 신비롭다. 역사적인 자료와 정보들은 인터넷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언제든 꺼내보면 된다. 마음에 감응만 담고 가자.
신들의 고향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아주 규모가 큰 멕시코 뷔페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연회장처럼 큰 규모의 식당인데 정원에서는 어느 가족이 주최하는 파티도 열리고 있다. 모두 옷을 잘 차려입고 파티를 즐기고 있다. 홀 안에는 전통 복장을 한 무희들이 춤도 춘다. 관광지 대규모 식당 같은 분위기다. 음식 맛은 뭐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대체로 경험상 눈이 요란하면, 입은 심난하다.
멀리 가서 피라미드를 보고 시티로 돌아온 우리는 또 하나 멕시코의 자랑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을 찾았다. 여기가 이번 멕시코시티행의 마지막 주요 여정이다. 1960년대 지었다는 이 박물관은 멕시코의 영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물관의 규모와 소장 수준이 만만치 않은 멕시코의 자부심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유일하게 이 박물관은 자국의 유적으로만 만든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들은 모두 ‘도둑질’해다가 만들었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등을 생각해보라. 아니! 스핑크스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이 왜 거기에 가 있는가? 잘 나가던 시절 몽땅 쓱삭해 온 것들이 지 자국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그런데 이곳 멕시코 인류사 박물관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멕시코의 유산들로만 채워져 있다. 여기서 멕시코의 문화적 자부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대단한데? 멕시코!
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1박 2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오후 나절 잠깐의 여유밖에 없으므로 한국 스타일 문화인 핵심 요약 찍기 비법을 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곳의 시그니처는 두 개인데 하나는 아즈텍 문명관에 있는 박물관에서 제일 유명한 유적, '태양의 돌'이고 나머지는 제물로 바치는 인간의 심장을 올려놓았던 조형물 착물(Chacmool)이다. 편편하게 만든 배 위에 심장을 올려놓았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정작 저 조각물의 표정을 보면 은근히 편안하게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인상을 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어제 뮤지엄데이에 이어 오늘은 멕시코 역사문화 데이를 보내며, 멕시코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우리의 관념을 상당히 넘어서는 문화적 자부심과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멕시코'하면 이런 것들을 떠 올렸다. 미국 남부 국경을 넘는 밀입국자들의 혼비백산한 모습과 마약상들 등... 대부분 미디어가 가공한 서방 자본주의 중심의 관점들에 의해 생산한 것들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중남미의 종주국인 멕시코에 와서 느낀 이들의 모습은 그렇게 가볍게 우습게 생각할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짧은 일정이 아쉬워지며, 다시 한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먼 곳을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싶어서 씁쓸해진다. 마치 그리스를 여행하고 떠날 때의 느낌과 비슷한 어떤 끌어당김이 있는 곳이 멕시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