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간다 - 대가족 여행
기나긴 코로나 팬데믹 끝 무렵, K3 가족이 한국에 왔다. 미국 가족들과 서울 가족 총 9명이 뭉쳐 1박 2일 전주여행을 떠난다.
프리미엄 고속버스
짧은 주말 일정이라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 이름도 찬란한 프리미엄 고속버스! 나는 거의 매주 타다시피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감탄이 대단하다. 세상 이런 럭셔리한 버스가 있다니… 안락한 의자에 앉으면,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에 앉은 회장님이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은근히 이 버스를 타 보지 않았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꼭들 한번 타 보시길!
하늘 풍경
이번 가족 여행 콘셉트는 미국 조카들 한옥체험과 한옥마을 관광이다. TV에서 본 한옥마을 정취와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 모습에 인상 깊었던 조카들에 대한 선물이다. 그래서, 정한 곳이 이곳 한옥체험 숙소 ‘하늘풍경’ 이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이리저리 다니다 결정한 곳이 이곳이다. 선정 이유는 방이 4개 있는 작은 한옥이라 방 4개를 모두 빌리면 우리 가족만 독채로 이 집을 쓸 수 있어서다. 한옥이 그렇듯이 방은 두 사람 겨우 지낼 정도로 작다. 마당이 소담하고 툇마루가 있어 우리 어린 시절 집이 생각난다.
베테랑분식
짐을 놓고 점심 식사 장소는 전주의 전국구 분식집 베테랑 칼국수!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 대합실에 분점까지 놓았던 유명한 분식집이다. 칼국수가 시그니처 메뉴인데, 걸쭉한 국물에 부드러운 면발이 일품이다. 국수를 먹었는데 죽 먹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묘한 칼국수다. 고명으로는 김가루, 들깨, 고춧가루만 올라가는데 저렴하기 그지없는 구성으로 최고의 맛을 낸다. 만두는 피가 마치 휴지처럼 얇아 속이 다 비친다. 피가 얇다 보니 먹어도 더부룩 배가 부르지 않아 애피타이저로 제격이다.
20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지방 여중고 옆에 골목 분식집이었다. 맛있는 동네 분식집이 지금은 커다란 주창장까지 겸비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역시 식당의 완성은 맛이다. 파이팅 베테랑!
외할머니네 솜씨
B가 여행 전 추천한 디저트 카페가 숙소 바로 앞이다. 흑임자 빙수가 맛있다 했더니, 블루리본 5년 연속 등재 집이란다. 신뢰감 상승! 따듯한 날씨에 밖에 앉아 먹는 빙수 맛이 일품이다.
한복과 경기전
조카들의 이번 여행 위시리스트 중 하나인 한복 체험! 하늘풍경 주인분께서 안내해 주셔서 두 녀석이 한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한복 고른 센스가 대단하다. 예쁘고 듬직하다. 여조카가 이쁠 것은 예상했으나, 남조카도 한복 입은 모습이 너무 듬직하고 멋지다. 주몽 같다 싶더니, 주몽 콘셉트이란다. 하늘하늘 한복 입고 경기전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봤다.
무궁화한정식
전주에서 그래도 값 꾀나 나오는 한정식집이다. 검사장 관사로 쓰던 집을 한정식집으로 개조해서 쓴다. 널찍한 마당이 부티나는 집이다. 위세 좀 떠시던 분의 집 티가 팍팍 난다. 맛의 고장답게 전갈한 음식들이 자연스럽고 맛있다. 전주에서 상견례하기에 좋은 식당인 듯싶다.
이곳으로 이동하는 택시 기사님께서 예전에는 이런 대규모 한정식 집들이 몇 군데 있었단다. 그런데 차츰 줄더니 코로나 팬데믹 때 완전히 타격을 입어 모두 없어지고 이곳 하나 남았다고 한다. 코로나의 후기는 항상 짠하다.
BEANTIE
저녁 디저트를 먹으려 요즘 전주의 로컬 핫플 객리단길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 하였으나 택시를 잡기가 애매한 곳이라 택시 3대를 잡아 이동한다는 것은 갑자기 암담한 일이 되었다. 잠시 고민 중 재치 있는 조카들 휴대폰은 쉴 새 없이 흔들렸고,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타면 약 20분 정도면 객리단 길 쪽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얻어낸다. 역시 디지털 정보화 세대. 가려던 카페가 공사 중이라 임시휴무다.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곳이 전주의 로컬 체인점들을 가지고 있는 카페 빈티에다. 전주에만 몇 군데가 있단다. 커피도 맛있고 디저트도 맛있다. 실패 없는 맛이랄까? 카페 분위기도 좋고 만족스럽다. 카페와 디저트에 진심인 B의 선택은 항상 옳다.
새벽 리서치 by K3
시차 적응이 안 된 그는 저녁식사를 마치면 흐물흐물 횡설수설 순두부가 되고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 뽀시락 거린다. 그가 새벽 '동네 한 바퀴'로 전하는 여행지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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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조선 때 호남 지역의 중심으로 사대문이 있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습니다. 어제저녁 택시에서 내린 곳 옆이 그 남쪽 문에 해당하는 '풍남문'이고, 풍남문 앞 관광지도에 전주부성의 구성이 잘 나옵니다.
우리가 궁금했던 경기전은 태종 때 아버지 태조의 어전, 즉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 합니다. 조선 팔도에 총 다섯 군데 태조 어진을 모셨는데 임진왜란 때 네 곳, 정유재란 때 경기전 마저 불에 타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이 경기전만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네요.
경기전 내에 전주 사고가 조선실록을 보관하던 곳이고, 전국에 4개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중 전주 사고가 유일하게 불에 타지 않았지요. 그 덕에 임진왜란 전의 역사가 후대에 전해졌습니다. 특이하게 건물에 1층이 없지요.
전주에서 놀란 것은 유명한 성당이 많고 가톨릭의 성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전동성당도 그중 하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전동성당의 예수님은 천주교를 박해했던 조선왕실의 경기전에 태조 어진을 마주 보고 계십니다. 제가 산책했던 새벽 6시에 많은 성도분들과 수녀님들이 성당에 들어가시네요. 복된 모습입니다.
아차. 한 가지 더. 전동성당이 지어질 당시는 전주부성의 성곽이 경기전과 성당 사이에 위치해서 두 곳이 분리되었었답니다. 높은 성곽이 허물어지고부터 예수님과 태조의 눈싸움이 시작되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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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맞는 아침
매일 21층 공중에서 눈을 뜨다가 마당 있는 땅에서 일어나니 아침 기분이 아주 푸근하고 정겨워서 편안하다. 날씨도 선선하고 새는 재잘거리고 싱그러운 초여름 아침 기분이 너무도 상쾌하다. 여행을 가도 호텔에 묵는 것이 일반적이니 주로 공중에서 눈 뜰일 밖에 없었는데, 이런 느낌이 진짜 오랜만이다. 물론 나같이 아무데서나 잘 자는 이는 기분 좋은 아침이겠지만, 딱딱한 한옥 바닥이 힘든 분들은 잠을 설쳐 피곤하실 게다. K3가 동네를 훑고 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동안, 나는 누워서 이 신선한 기분을 느끼며 전주의 한옥마을을 기억에 담고 있다.
주인장 아주머니께서 한국식 조식을 주셨다. 집에서 직접 만든 떡이 너무나 부드럽다. 살가운 인사로 배웅해주시니 넉넉한 시골 인심이 느껴진다.
신뱅이
원래 가려던 미슐랭 가이드에 추천된 비빔밥집 한국집은 15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해가 중천에 뜨니 갑자기 훅 덥다. 갑자기 숙소 옆 ‘신뱅이’라는 식당으로 융통성 있게 변경한다. 이 집은 전에 KTX 매거진에서 소개한 바 있는 곳이다. 아침 메뉴로 제격인 콩나물국밥도 판매해서 좋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그리고 김치전으로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했다. 분위기는 별 다섯 개. 맛은 평타 나쁘지 않은 정도다.
카카오 프렌즈 전주
풍남문 사거리 전주 한옥마을 관문에 카카오 프렌즈 샵이 생겼다. 전주 로컬 문화를 만난 카카오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귀여움으로 이곳은 이미 최고 인기 스폿이 되었다. 귀요미 메신저 이모티콘들이 자본과 시대를 잘 만나니 이런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월트 디즈니의 부활이다. 월트 디즈니가 산업화의 풍요로움을 업고 태어났다면, 카카오 친구들은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자본과 문화의 만남은 나쁘지 않다. 나이스!
경우 @ 객사길
가장 연장자 C는 전통과 자연보다는 쇼핑에 더 ‘진심’이시다. 우리는 한옥마을을 벗어나 쇼핑타운 객사길로 이동한다. 일단, 그곳에 카페 하나 잡아 베이스캠프 차리고 각자 쇼핑을 즐긴 후 역으로 이동할 게다. 어제 임시휴무라 못 갔던 카페 ‘경우’로 향했다. 12시부터 오픈한다기에 15분을 기다렸다가 첫 손님으로 입장한다. 카페 분위기가 전주풍 작렬이다. 고즈넉하고 세련된 목조 공간이 눈을 확 사로잡는다. 커피와 미숫가루 모두 맛있고, 디저트로 주문한 래밍턴 다쿠아즈도 맛나다. 여러모로 핫플 카페의 스웩이 넘친다.
전주역
귀경은 토요일이니 차는 막힐 테고 해서 기차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찾은 전주역. 꽤 오래전 일이다. 출장 차 운전을 해서 찾은 첫 전주행에서 한옥 톨게이트를 보고 근사하다고 감탄한 기억이 선명하다. 톨게이트뿐만 아니라 역도 한옥으로 멋지게 지어놨다. 차가 막혀 입구에서 내려서 걷는 도중 만난 한글 보도블록도 멋지다. 역시 우리 한글 싶다. 갑자기 국뽕?! 전주의 아이덴티티는 아주 확실하다. 볼 때마다 좋은 인상으로 남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도시의 면모의 격이 다르다. 다른 지역들도 생각해 볼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굿바이 전주, 라이브 브런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