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9
G와 B는 조식 생각이 없거나 자거나 오전 11시 이전에는 방콕 한다. 얼리버드인 나는 주변 산책과 혼밥으로 이른 오전 시간을 여유만만하게 보낸다.
처음 한화콘도 해운대가 생겼을 당시 난 왜 저리 한가한 곳에 만들었나 의아했다. 해운대 해변과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엔 별거 없이 덩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와이 호노룰루 같이 변해버렸다. 대기업은 알았던 거다. 역시 대한민국은 대기업 공화국이다. 아침 햇살 가득한 바다와 광안대교를 품은 마린시티는 한가하고 평화롭다.
한화콘도 해운대
주변이 변해서 그런지 이곳도 처음보다 많이 럭셔리해진 느낌이다. 예전에도 이랬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리노베이션을 한 듯하다.
원조전복죽
상호가 너무 일반명사라 검색이 될까 했는데 해운대에 있다고 확실히 검색된다. 해운대에도 전통 있는 전복죽집이 있었구나. 예전에 바닷가 호젓하던 식당이 재개발로 빌딩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니 2시간 무료주차를 넣어 주신다.
부산에서 전복죽은 처음인데, 반찬차림이 풍성하고 정갈하다. 죽은 내장이 많이 들어간 듯 어두운 초록빛이다. 제주도 전복죽에 비해 좀 뻑뻑한 감이 있지만, 맛은 있다. 이 정도면 50년 전통 인정.
나 홀로 조용한 조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동백섬을 지나니 기분이 오묘하다.
아난티코브 힐튼호텔 기장
점심은 기장에 있는 아난티코브에 양식당 라메르를 일찌감치 예약해 놓고 방문했다. 아난티코브는 해운대에서 약 20여분 떨어진 호젓한 바닷가에 들어선 꽤나 괜찮은 리조트단지다. 그 안에는 힐튼호텔과 아난티타운, 그리고 펜트하우스로 구성된 프라이빗 리조트가 있다. 이곳의 건축미와 경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환경이 기장을 핫한 지역으로 견인한 일등공신이다.
주차를 힐튼호텔 지하 주차장에 하는 바람에 라메르가 있는 펜트하우스 쪽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힐튼호텔의 시그니처인 흰 아치 장식 터널을 지나면 로비가 나온다.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가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동하면서 보는 동해안 최남단의 바다는 장엄하고 평화롭다. 겨울날씨 답지 않게 10도를 훌쩍 넘은 기온이 산책을 편안하게 도와준다. 정말 소문대로 건축미도 자연미도 예술이다.
라메르
오늘 점심 장소다. 예약을 할 때 한식이나 양식 메뉴를 묻는다. 우리는 양식 스타일 파인다이닝 코스를 주문해 놓은 상태다. 우선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바다를 향한 통유리가 시원하게 보이는 시원한 뷰에 감탄이 나온다. 공간은 더운 나라 휴양지 콘셉트로 넓고 높은 공간에 여유로운 자리배치가 되어 있다. 가구나 마감장식재가 라탄이나 목재를 주로 사용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내부 컬러도 오렌지 계열을 주로 사용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한다. 내부의 오렌지 색상과 창 밖 바다의 블루가 보색대비를 이루며 강렬하고 아름다운 인상을 준다.
평일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이지만 한산하다. 바다를 감상하는 동안 메뉴를 하나하나 서빙하기 시작한다. 점심메뉴는 7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스타터부터 스테이크에 디저트까지 모두 아주 좋다. 코스 내내 주 재료는 해산물이다. B가 이렇게 해산물을 주로 요리해 주는 파인다이닝 코스는 처음이라며 만족해한다. 소스들도 아주 맛있어 싹싹 비운다. 메인인 숙성 고기 스테이크도 아주 맛있다. 디저트도 샤베트와 리조또가 밑에 깔린 묘한 메뉴가 있었는데, 이 녀석이 아주 창의적이고 인상적이었다. 디저트에 밥이라니... 맥락이 맞진 않는데, 이번에도 맥락을 뛰어넘는 신선한 결과가 나왔다. 카푸치노도 적당히 부드러운 맛으로 좋아서 거품까지 싹 비웠다.
그런데 무엇보다 신나는 일은 인터넷에 있는 런치 코스의 가격이 그대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보통 호텔은 메뉴판 가격에 10% 세금과 10% 봉사료가 포함된 금액을 결제한다. 그런데 이곳은 소위 '텐텐'이 붙지 않는다. 이런 훌륭한 곳이 있나! 뷰에 놀라고, 음식에 즐겁고, 분위기에 만족하고, 계산할 때 행복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책로를 따라 걸어 힐튼호텔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중천을 넘어 기울어지기 시작한 햇볕이 강렬하다. 오랜만에 이렇게 선명한 바다를 눈에 담는다.
롯데프리미엄아웃렛
기장 지역이 개발되면서 이곳에는 이케아와 롯데 아웃렛 등 많은 시설이 자리 잡았다. 아난티로 이동하면서 본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쇼핑몰 광경은 완전히 미국 같았다. 넓은 땅에 낮고 커다란 건물과 주차장이 딱 땅 넓은 나라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롯데프리미엄아웃렛으로 이동해서 저녁까지의 시간을 때우기로 결정했다. 어제의 부산과 오늘의 부산은 180도 다르다. 어제의 부산은 시간이 만들어낸 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오늘 부산은 사람이 만든 직선과 면을 보여주었다. 아웃렛과 쇼핑몰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물건도 많고 쇼핑하기 너무 편리하다. 여기 사시는 분들 좋겠다. 몇 가지 세일하는 옷가지를 재미로 구입한다.
나가하마 만게츠
큰 녀석 A가 다니는 회사 회장께서 강추하신다는 해운대에 있는 라멘집이다. 부산행을 한다니 A가 한번 방문해 볼 것을 추천했다. 점심을 거하게 먹었으므로 저녁은 라멘도 괜찮겠다 싶어 이곳을 저녁 메뉴로 결정했다. 웨이팅이 많은 곳이라 테이블링이라는 웨이팅 앱을 통해 예약을 하고 이동을 했다. 운전 도중 우리 차례가 오는 바람에 자동 취소가 되기를 두 번. 안 되겠다 싶어 가서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효율적인 식사자리 잡기를 위해 웨이팅 하기와 주차하기 역할을 나누어 움직인다.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부산기계공고후문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식당으로 이동한다. 멀리서부터 줄 서 있는 식당이 보인다. 유명하긴 한가 보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입장 콜을 받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입장 손님은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하고 벽 쪽에 앉아 바 테이블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외부 대기에서 내부 웨이팅으로 승진한 것이다. 식당 내부 구조는 전통적인 일본 라멘집 형식이고, 마감재나 분위기는 매우 팬시하고 현대적이다.
곧 자리가 나고 우리도 앉아서 음식을 받았다. 고기 베이스 육수는 깔끔하고 시원하다. 특히 매운 다진 양념이 있는데 이 녀석이 걸작이다. 적당히 넣어 먹으니 국물에 감칠맛이 더해진다. 면은 얇은 튀긴 면인데 처음에는 약간 바삭한 식감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퍼지면서 부드러워진다. 교자도 잘 튀겨서 맛이 좋기는 하나 라멘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라멘은 다 먹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마치 멸치맛 국물을 먹은 것처럼 개운하다. 맛있는 음식을 결정하는 요인은 먹을 때 보다 오히려 식후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식사를 마친 후 개운하고 기분 좋은 감정이 든다면 그 음식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런 식당들은 항상 붐빈다. 이곳이 그랬다.
로우 앤 스위트
해리단길에서 가장 핫하다는 카페다. 물론 카페 전문가 B가 제공하는 정보다. 위치는 어제 들렀던 소품샵 MANTION과 같은 건물에 있다. 이 건물에 해리단길에서 가장 핫한 샵과 카페가 모두 있다.
이 카페의 포인트는 스타일과 분위기가 뉴욕스럽다는 거이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카페같이 자연스레 꾸며 놓은 점이 젊은이들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벽 위에 부착한 긴 거울이나 웨인스코팅 몰딩을 붙인 포스테이블, 나무 전시대와 바닥타일 등 내부 모두가 뉴욕의 어느 카페 같다. 주인장이 뉴욕에 감성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그곳에 계셨나 싶다.
화룡정점 포인트가 있다. 커피를 담아주는 컵이 뉴욕 종이컵이다. 이 파란 일회용 컵은 뉴욕 맨해튼에 아침 시간에 조식을 파는 포장마차에서 쓰던 디자인이다. 컵을 보는 순간 울컥 추억이 몰려온다. 뉴욕에 있던 시절, 지하철을 갈아타기 전 약 2달러. 정도를 내면 이 컵에 밀크를 부은 커피와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을 살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베이글과. 커피를 먹는 것이 나의 아침식사였다. 베이글은 냄새가 나지 않아 지하철에서 먹어도 민폐가 아니다. 맨해튼의 출근 시간 뉴요커들 손에는 이 파란 커피컵과 던킨도너츠 오렌지컵 둘 중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주 대표적인 뉴욕 모습이었다.
컵을 보고 흥분해서 들썩대다가 그만 커피를 쏟고 말았다. 주인장이 황급히 키친타월을 제공해 주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젊은 사장님이시다. 카페 앞에서 열심히 사진 찍던 커플이 6시 30분쯤에 들어왔는데, 기계 껐다고 마감하셨단다. 엄청 일찍 닫으시네. 역시 워라밸에 집중하시나 보다. 커피와 파운드케이크가 맛있다.
오늘은 일찌감치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조신하게 돌아간다.
아저씨대구탕
허영만의 백반기행이 소개한 대구탕집이다. 이번 부산행은 미디어 추천을 많이 참고했다. 한화 해운대에서 약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해운대의 동쪽 끝 미포라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보여주는 경로가 목적지 부근에서 아주 꼬불꼬불한 실타래 같은 모양이다. 처음 보는 경로 패턴이 낯설어 의아했다. 차가 목적지 근처에.도착한 것을 확인 후 일단 주차가 편한 곳에 주차 후 걸어서 이동했다. 식당은 아직 예전 어촌의 꼬불 골목길이 남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왜 내비게이션 경로가 그리도 생경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주 낡은 골목에 색이 바랜 간판이 보여주는 식당의 내공과 구력은 대단했다. 대구탕은 뽀얀 국물에 큰 대구살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땡초가 송송 들어간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대구는 아주 부드럽지는 않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구살이 많이 들어있어 여자분들은 다 먹기가 벅찰 정도다. B가 치킨 먹는 것 같다고 한다. 뼈도 크고 살도 많고 쫀쫀해서 그런가 보다. 오전 중인데도 간간히 손님들이 많이 찾으신다.
재미있는 광경이 있었다. 이 식당도 '블루리본'을 받았는데, 그 표시 스티커를 음료수 냉장고 구석에 무심하게 붙여 놓은 것이다. 보통은 자랑스러운 스티커를 입구 문이나 잘 보이는 곳에 부착하는 것이 상례인데 말이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해서 엄청 시크해 보였다.
비비비당
달맞이언덕에 있는 전통차 카페다. G가 지난번에 다녀온 후 강력추천이다. 달맞이 고개 목 좋은 빌라촌에 4층 번듯한 건물이 있고, 그곳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같이 들어 있다. 맨 위층이 카페인데,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와 뷰에 압도된다. 어제 아난티코브와 필적할만하다. 바다를 향해 난 큰 창들은 해운대 동쪽 바다를 오롯이 담고 있다. 아난티코브 바다는 눈높이에서 즐겼다면, 이곳의 바다는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눈이 시원해진다. 젊은이들이 바다를 향해 등을 보이고 앉아들 있다. 조용히 바다를 즐기는 감성파 청년들인가 보다.
실내의 꾸밈새나 소품, 그릇 등 모두 디테일이 뛰어나다. 주로 전통차나 죽 등을 판매하는데 우리는 단팥죽과 호박식혜를 주문했다. 모두 맛있다. 떡도 하나 나뭇가지 같이 생긴 포크에 찍어 주는데 쫄깃하니 좋다. 맛도 뷰도 분위기도 모두 만족스러운 곳이다. 2층은 다도와 관련된 갤러리이자 숍인데, 정성이 들어간 공예품인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다. 아직 차 문화에 투자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으므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비비비당 디저트를 마지막으로 부산을 떠난다. 장시간 여행 준비로 모두 몸 매무새를 가다듬고 북쪽으로 출발한다. 오랜만에 만난 부산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떠나면서 벌써 다시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