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7말 8초 피크타임 여름휴가
새벽 4시 58분. 동남아행 비행 스케줄은 항상 새벽에 떠나고 새벽에 귀국한다. 그러니 3박 5일이라는 묘한 일정이 나온다. 고생 중인 B가 열흘 간 무시무시한 "퐁당퐁당 당직' 근무를 마치고 하기휴가를 나왔다. B는 꼭 비행기를 타고 잠시라도 힘든 현실도피를 해야 한다기에, 비행시간과 비용 등을 고려해서 가까운 휴양지 필리핀 세부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공항은 새벽부터 피크타밈답게 새벽부터 붐볐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항에서의 시간은 넉넉하게 와도 체크인, 환전, 식사 등 하다 보면 탑승시간 맞추기가 빠듯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찾은 공항이 반갑다.
체크인 카운터 직원이 영어가능 여부를 묻더니 비상구 옆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앞 공간이 넓어 발을 쭉 뻣을 수 있어 인기자리였는데, 최근 어떤 이해 못 할 분의 공중 개문으로 한참 황당했던 기억이 재밌다.
편히는 앉았으나 비행기는 휴가 피크라 그런지 탑승 후 1시간이나 꼼짝도 안 한다. 출발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해진다. 비행 여행 할 때, 탔는데 이륙 안 하고 착륙했는데 못 내리고 대기하면 피곤은 갑자기 증가한다. B는 타자마자 내릴 때까지 잣다. 어쨌든 4시간 10분 비행시간 꽉 채워서 세부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 전, ASEAN 학교들과 사업 출장 차 동남아 국가들을 내 집 드나들듯이 자주 다녔었다. 그때마다 공항에서 느끼던 후끈하게 습한 더위가 기억이 나서 단단히 각오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런데, 웬일? 생각보다 덥지 않다. 구름이 낀 날이라 그런가? 아무튼 덥지 않다. 나이스.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셔틀 서비스로 이동한다. 깔끔한 현지인이 내 이름 팻말을 들고 기다린다. 오랜만이다 이런 분위기! 잠시 양해를 구하고 현지유심 구입부스로 가서 현지 유심으로 교체한다. 유심교체가 요즈음 일상과 단절하는 현실 도피의 기본 통과 의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카카오톡은 일상과의 절연을 허락하지 않는다. 데이터가 연결되자마자 다시 한국이다. 오랜만에 창밖의 동남아 거리 모습이 정겹다.
Plantation Bay Spa and Resort
휴양지인 세부에는 많은 리조트와 호텔들이 있다. 우리는 가장 로컬스러운 곳을 원했고, 그래서 이곳을 이번 휴양지로 선택했다. 이 리조트에 대한 일반 정보는 온라인에 넘쳐난다. 한국 손님들이 많다. 전형적인 휴양지 리조트 구성이다. 로비에서 아주 가까운 방(YUO 6)을 배정받았다. YUO는 건물 코드 6은 방 숫자다. 수영장이 보이는 라군뷰라서 전망이 좋다.
출출하진 우리는 리조트 내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시내 쇼핑몰로 가보려 한다. 피곤해서 저 푸른 수영장을 눈앞에 놓고도 못 들어간다.
Route 66
리조트 내 미국 다이너 스타일 식당이다. 치즈버거와 시저샐러드를 주문해서 요기를 한다. 깨가 앞뒤로 잔뜩 박힌 빵과 패티가 아주 맛있다. 햄버거는 아주 좋았는데, 시저 샐러드는 양과 질 모두 여엉 아니었다.
Ayala Mall
세부시티 중심에 있는 대형 쇼핑몰이다. 리조트에서 약 40분 택시 이동하는데 메터기 요금은 550페소(한화 약 13,000원)이다. 물가가 싸긴 싸다.
전형적인 동남아 쇼핑몰이다. 분위기는 한국의 오래된 쇼핑몰 느낌이다. B와 G는 도저히 살 것이 없다며,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다나? 진열 상품들의 컬러가 아주 화려하고 이쁜 유채색들이다. 한국의 흑백 상품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여기서 보면 이쁜데 한국 가서 보면 혼자 튀게 된다. 쇼핑은 신중하게! 괜히 여행뽕에 취해서 마구 사면 안 된다.
Gerry’s
B의 로컬음식 경험을 위해 선택한 로컬음식 대표 식당이다. 오징어와 야채요리, 그리고 면요리를 주문했다. 음식이 너무 달고 소스 맛이 강해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너무 달고 끈적이고 들척지근한 느낌… 담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소금을 덜 너어달라 얘기했지만, 여전히 짜다. 현지 음식 경험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으로!
식사를 마치고, 식료품 마트에 가서 컵라면과 산미구엘 맥주 등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GLAB(필리핀 우버)으로 택시를 불러 리조트로 귀가한다.
킬리만자로 카페
리조트 내 조식뷔페식당. 오전 10시 30까지 아침뷔페 마감이라 9시 30분에 기상한 우리는 서둘러 이동하고 전투적 속도로 식사를 했다.
수영장 한가운데 떠 있는 사방이 수영장 뷰라 멋진 식당이다. 전형적인 동남아 호텔 조식뷔페 메뉴 구성이다. 빵과 샐러드, 오믈릿 등 기본적인 아침 메뉴로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수영타임. 오늘은 온종일 리조트에서 수영하고 휴식하며 지낼 예정이다. 드넓은 이곳은 해수풀과 담수풀이 섞여 있는데, 담수풀은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우리는 해수풀에 몸을 담근다. B와. G는 온종일 튜브 위에 둥둥 떠서 보낸다.
물놀이는 곧 배가 출출해지게 한다. 노는 곳 바로 옆이 조식 먹은 킬리만자로 카페다. 바깥 자리 물가에서 햄버거와 샐러드로 오후 요기를 한다.
CORWIE COVE
B와 G는 바닷가에 왔는데, 입맛에 맞는 담백한 해산물을 못 먹어 괴로워한다. 그래서 결정한 비장의 카드는 근처 막탄시에 있는 샹그리라호텔 식당인 코위코브다. 샹그리라는 홍콩베이스의 5성급 고급호텔 체인이고, 어느 지역에서든 최고의 클래스를 자랑한다. 개통한 현지 유심 전화 밸런스 부족으로 계속 끊겨 고생 끝에 예약을 하고 택시를 불러 이동한다. 마침 이 시간에 태풍 영향권이라 엄청난 비와 바람이 단시간에 휘몰아친다.
샹그리라 호텔은 전형적인 휴양호텔 표본이다. 제주 중문에 있는 신라나 롯데와 같은 느낌인데 더 깔끔하고, 고급지고 권위 있다. 구석구석 자세히 보면 오래된 나무나 돌 느낌들이 있다. 방금 지은 브랜드 뉴 호텔들이 아무리 럭셔리하다 한들 이런 경륜 베인 호텔이 그동안 지닌 세월과 경험의 노련함을 넘어설 수는 없다.
코위코브는 호텔 밬 정원과 수영장을 지나 바닷가 쪽에 있다. 소위 ‘뷰깡패’라는 것이다.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야외 테라스 자리를 예약했지만, 비기 오는 관계로 포기하고 식당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밤이라 바다도 안 보인다. 이 곳은 필히 시야가 좋은 낮이나 노을 질 때 와야 할 곳이다.
식당 내부는 중국풍이다. 해산물 빅플레터를 주문하고 그릴에 담백하게 구워 나온 해산물들을 순식간에 해 치웠다. 그래! 이 맛이지. 그냥 불향 나게 구워만 주면 돌 것을 왜 다른 곳들은 이리 못주나… 필리핀 입국 후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비 카페에서 커피와 초콜릿케이크 디저트까지 모두 해결한다. 초콜릿 케이크는 맛은 있지만, 달아도 너무 달다. 머리 아프게 달다.
GLAB 택시를 호출해서 귀가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물놀이가 피곤했는지 모두 금방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