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0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기 2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어제 야간 계획을 취소하고 일찍 잔 일행이 새벽 6시 30분에 모두 기상하여 멀쩡한 상태가 되었다. 오랜 여행 경험에 없는 일이라 당황스럽다. 푹 자고 일어난 후라 컨디션도 비교적 양호하다.
11시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여유로워 오전에 트레비분수 쪽을 다녀오기로 하고 로마의 시간을 좀 더 늘려본다. 버스를 타고, 코르소(Corso) 정거장에 내리면 바로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다. 관광지 중 관광지. 여느 관광객들처럼 사진 신나게 찍고 다른 팀들도 찍어주고 트레비 방문을 기념한다.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분수 난간에 앉아 동선도 던지고 사진도 찍었건만 이제는 울타리를 쳐놓아 근처에는 갈 수가 없다. 야박해졌네.
L'ANTICO FORTO DI PIAZZA TREVI
분수 광장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겨울 오전 시간인데도 노상 식사를 할 수 있는 이곳의 기후가 너무 부럽다. 한국은 지금 영하 10도 이하로 얼어붙어 있다는데… 이런 온화한 겨울이라니. 바람도 찬기운 하나 없는 훈풍이다. 카페도 붐비고, 주인장들은 늘씬 핸섬하다. 여유가 있어. 유럽 사람들. 특히 이태리와 스페인이 우리 바이브와 잘 맞는다. 우리 스타일!
식사를 마치고 판테온 쪽 유명 젤라토 맛집을 찾아 슬슬 걷는다. 걷다가 버스를 탈 요량이다. 유럽의 재미는 걷기에 있다. 걸어야 조밀하고 세심한 재미있는 요소들을 보고 즐길 수 있다. 다리만 더 건강했어도 많이 걸었을 텐데…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순리지.
열심히 걸으며 쇼핑욕에 못 이겨 몇 가지 너무 이쁜 물건들을 샀다. 구매의 조건은 작은 것 가벼운 것! 짐을 늘이면 안 된다. 숙소 복귀를 위해 타바키에 들러 G의 버스표를 사려했으나 도심 타바키에서는 버스티켓을 안 판다. 도전 삼아 내 신용카드를 태그 했더니 된다. 버스 타고 숙소로 복귀해서 한국인의 위장을 편하게 해주는 처방 누룽지를 불려 먹고 짐을 싸서 숙소를 떠난다. 오후 4시 비행기로 마드리드로 이동해서 자고 내일 오후에 기차로 우리 여행의 본격 시작지점인 그라나다로 이동할 예정이다. 짐 싸서 숙소를 나오니 갑자기 갈 곳 없는 홈리스가 되어 버렸다. 길거리 벤치에 앉아 멍하기 딱 좋은 날이다.
PROFILI CAFE
어제 아침 동네 산책하면서 들러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던 동네 카페로 로마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러 온다. 옆에 좀 더 근사한 식당을 가보려 했으나 자리도 없고 별로 반기는 의지가 안 보여 이곳으로 다시 왔다. 친절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이태리 아저씨 사장님이 이제 정겹다. 우리 단골 된 듯. 연어 샌드위치 한 개로 셋이 나눠 먹는 것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젤라토 가게로 간다. 유럽 돌길에 슈트케이스를 끌고 이동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태리 왔는데 젤라토는 먹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곳은 원래 바티칸 광장 앞에 있던 유명가게였는데 이곳으로 확장이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전 후 비즈니스가 예전 같지 않은 상태인 듯 블로거들이 전한다.
GELOTTI SRL
몇 발짝 걸어서 도착하니 우리를 보고 살짝 호객을 한다. 우린 알고 찾아온 건데… 다양한 아이스크림들이 있고 우리는 새로운 아이템 두 개를 고르느라 심사숙고한다. 최종 픽은 밤맛(Chest Nut)과 베스트 아이템 태그가 붙어있는 크레마 로마나(Crema Romana)다. 밤맛 젤라토가 특이하고 맛있다.
주인장이 구글에 리뷰 좀 써달라고 너스레를 떤다. 맛있는 김에 과일 맛도 두 종류 먹어본다. 망고 맛과 배(Pear) 맛을 선택했는데 배 맛은 상큼 시원하니 맛있고 망고도 진한 것이 신선해서 괜찮다. 천연재료를 쓴 탓인지 많이 달지 않고 개운하다. B가 소상공인 격려 차원으로 구글에 밤맛과 배맛이 뛰어나다고 리뷰를 올렸다. 여종업원과 사장님이 신나 하신다. 다음에 오면 한국분들이 좀 찾는 곳이 되어 있으려나? 한국 입맛 잡으면 성공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듯하다.
동네가게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이제는 공항으로 떠나야 한다. 우버를 부르려다 길가에 줄지어 대기 중인 택시들을 보고 수 초간 고민한다. 디지털 플랫폼에 밀린 아날로그 세대 격려라는 말도 안 되는 거창한 심정으로 택시를 타 본다. 맨 첫 택시 기사님이 노인분이신데 인상이 선하고 좋으셨다. 인상 믿으면 안 되는데… 그래도 탑승해서 공항으로 이동한다. 요금은 55유로 동일요금이고 택시문에 인쇄해 놓았다. 아마도 바가지를 방지하기 위해 고정 요금제를 운영하는 거겠지. 어느 나라나 몰상식한 자들이 많으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Leonardo da Vinci)
다빈치공항은 역시 국제도시 공항답게 규모와 수준이 있다.
공항이 위치한 로마 근교 지명에 따라 보통은 피노누치공항(Fiumicino)으로도 부른다. 그래서 IATA 코드는 FCO로 사용한다. 공항의 정리된 샵들이나 청결도, 어린이 놀이시설, 공연 등 여러 면에서 국제적 명성이 있는 공항답다. 특히 간단한 요기를 하러 올라간 2층 식당가의 인테리어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화려하고 복잡하면서도 경쾌하다. 역시 로마, 이태리의 디자인 감각! 로마 사람들의 패션 컬러 매칭 감각을 보면 그 세련된 능력에 번번이 감탄한다. 일반인이 웬만한 한국 멋쟁이 연예인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싶다. 여행의 길목에 잠시 들렀지만, 안 오면 서운했겠다. 다시 와서 찬찬히 둘러본 이곳 로마는 진정 멋쟁이 도시였다.
IBERIA라는 로컬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로 날아간다. 기내 유일한 동양인이 우리다. ‘올라’의 나라 스페인으로 가자. 북미나 유럽 저가 항공사들은 물도 한 모금 안 준다. 돈 내고 사서 먹어야 한다. 최저가를 위한 몸부림. 비행시간은 두 시간이니 무조건 참는다.
2시간 정도 후 마드리드 도착 안내 기장 방송이 들린다. 이제 드디어 스페인 입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