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1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여행기 3
마드리드 공항에 착륙했다. 하룻밤 잠시 머물고 떠날 곳이라 별 기대와 생각 없이 내렸으나 공항 내부를 보는 순간 가우디를 연상하는 실내디자인을 보고 우리가 스페인에 온 것을 강렬하게 인식한다.
아돌포 수아레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Adolfo Suárez Madrid-Barajas Airport)
하늘로 뻗은 기둥과 둥글둥글 천정은 구엘성당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의 나무와 구엘공원의 천정을 즉각 연상하게 한다. 가우디의 나라 스페인이 보내는 환영 인사다.
공항의 사인 시스템도 시원시원하게 잘 보이고 미적으로도 잘 정돈되어 있다. 로마와는 다른 심플해서 상쾌한 공간을 보여준다. 요즘 유럽 공항들은 우버나 카쉐어링 서비스 포인트를 따로 지정해 놓는다. 택시 정류장 있듯이 우버 픽업 포인트가 있어 사람들이 각자 앱으로 호출한 차를 기다리다. 스티브잡스가 인류에게 선물한 문화다. 이런 생활 문화의 변화를 잘 따라잡아야 나이 들어서도 여행할 수 있을 텐데… 좋은 곳 와서 괜한 걱정을 하나?
LAPUTURE prado
오후 8시경 숙소 체크인하고 잠만 자고 내일 점심때 기차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굳이 눈만 붙일 숙소에 투자할 필요가 없어 기차역 가까운 곳에 게스트하우스를 독방으로 예약했다.
오랜만에 묵는 게스트하우스. 개인적으로 ‘게하 여행’을 싫어하지 않는다. 호텔에 비해 개방적이어서 오랜 나 홀로 여행에도 고독감이 덜하다. 공용주방 등도 있어 편리하고 다인실 방도 진상만 없으면 불편할 일이 없다.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도 덜하다.
이 게하는 무척 팬시 하다. 모던하고 깨끗하고 위치가 좋아 젊은이들이 많다. 리셉션 친구들도 친절하고 영어도 잘한다. 단, 공용주방이 없다는 것은 단점인데, 대신 자율 식사 공간이 있어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 등은 제공한다.
조식 뷔페 서비스가 7유로다. 간단히 빵, 과일, 음료 하기에 나쁘지 않아 아침식사는 여기서 때운다. 오랜만에 먹는 구운 식빵이 역시 맛있고 오렌지주스가 압권이다. 가성비 좋은 식사를 마치니 동이 터온다.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박물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숙소 옆은 아토차역이고, 건너편에는 소피아 미술관과 라이브러리가 있다.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설렁설렁 동네 한 바퀴 마실을 나가본다. 이곳은 주로 현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로 유명한데 오늘은 아쉽게도 토요일이라 폐관일이다. 지난번 여행에도 못 봤는데 이곳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입장은 못해도 건축물 외관 구경이나 하자 싶어 길을 건너 다녀본다. 특별한 목적과 의무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향해보는 시간과 거기서 만나는 우연이 주는 이야기들이 만만치 않다.
도서관은 휴관일이지만, 북샵은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을 때리는 매대의 책들! 한강 작가의 책들이다. 그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 <이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나란히 아름다운 커버 디자인을 입고 다소곳이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다. 아! 이 자랑스러움이란! 한 작가를 알지도 못하고 일면식도 없건만, 왜 이리 뿌듯하고 기쁜지. 동질감과 ‘국뽕’에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간다. 알찬 동네 한 바퀴 구경을 마지고 숙소로 돌아온다..
점심식사를 하러 근처 초밥집을 찾았으나 라멘만 하고 초밥은 없단다. 다른 초밥집을 찾아 헤매다 휴일 오전이라 문 연 곳이 없어 다시 숙소로 와서 햇반과 김으로 점심식사를 때운다.
그라나다까지는 기차로 이동한다. 기차는 아토차역에서 출발한다. 아토차역은 마드리드의 중앙역이다. 오랜만에 온 역은 역시 멋지고 웅장하다. 큰 기대 없이 잠시 들러가는 마드리드였지만, 꽤나 많은 인상을 가지고 떠난다. 비즈니스 좌석을 예약해 좌석이 널찍하니 안락하다.
기차는 남쪽으로 달린다. 마드리드를 떠나면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가끔 낮은 구릉 정도 있은 정도의 평지다. 스페인은 넓은 나라다. 두어 시간 지나면서 평평하던 풍경은 산이 있는 풍경으로 변한다. 심지어 그라나다 근처에 다다르니 저 멀리 웅장한 설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아. 그라나다에 설산이 있구나. 저 풍경은 내가 상상하던 남스페인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었구나. 기차 안내방송이 곧 종착역 그라나다를 알린다. 이제 비로소 이번 여해의 시작점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