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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피서 남해행 7, 남해읍

2025. 7. 9~12

by 여기 저기

평산마을에서 다운타운 남해읍까지는 약 13km 거리에 20분 안쪽 운전거리다. 남면에 있는 식당들이 대체로 오후 5시면 문을 닫다 보니 비교적 영업시간이 긴 식당들이 많은 남해읍으로 식사를 하러 가게 된다.


아무래도 남해군의 중심번화가이다 보니 오래되고 맛있는 식당들도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이동해서 식사를 한다.


언니네

점심에 도우에서 피자를 근근하게 잘 먹은 덕택에 저녁식사 시간에는 식탐이 없다. 남면 유김밥을 가서 간단히 분식으로 때우려 했으나 4시 20분 라스트오더 란다. 헐.


읍내에 있는 김밥집을 검색하고 움직인다. 군청 앞 깔끔한 분식집이다. 매운 어묵김밥과 수제비를 주문한다. 어묵을 고추장에 볶아 김밥의 주재료로 넣는데, 어린 시절 K의 어머니 김밥 레시피랑 같다. 수제비는 평범하지만, 김밥이 입맛에 잘 맞았다


행복빵집

읍내에 유명한 로컬빵집. 유자크림빵을 두 개 구입해 운전 중 다 먹어 버렸다. 빵 부분이 부드럽고 맛있다. 입에 붙어 후다닥 먹었는데, 다 먹고 나니 크림을 조금 덜 넣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이스.


남해전복물회

주차장에 차가 꽉 차있는 로컬 맛집이다. 가게 앞에 큰 대기판이 있다. 문을 여니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운이 좋아 빈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메뉴 중 장어국이 있길래 먹고 싶었으나 겨울메뉴란다. 하는 수 없이 전복죽과 전복 물회를 주문한다.


어름 숭숭 전복물회와 초록빛 전북죽이 나온다. 기본으로 생선 미역국을 주는데, 이 미역국이 제일 진국이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가자미 미역국. 국을 먹으며 뼈를 발라내야 한다. 날이 더우니 전복물회도 시원하고 새콤하니 좋다. 역시 음식을 먹는 것은 종합적인 감성이 모인 감각이다.


화랑갈비

날은 덥고 입맛은 없다. 너무 해산물과 간단한 식사만 한 탓인지 근근한 음식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고기 아닌가. 남해읍에 블루리본이 추천하는 돼지갈비를 파는 노포가 있다.


평을 보니 구순 할머니께서 아직 음식을 하신다는 이야기가 있는 구력 짱짱 식당이다. 식당 앞 골목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 큰 길가에 주차 후 걸어서 이동한다. 가까이 가도 식당에는 불빛이 안 보이고 껌검하다. 영업을 안 하시나. 불안하다.

허름한 노포를 좋아하지만, 여기는 지금까지 가본 노포 중 거의 최고 수준의 남루한 분위기다. 쓰러져가는 옛날 가옥 중정 지붕을 막아 비를 피했는데 틈새들이 숭숭해서 보온 보냉은 기대하기 어렵다.


친절한 중년 사장님께서 서빙해 주시는데 구순 노모의 따님이시다. 어머니를 도우러 서울 근처에서 내려오셨다. 구순 할머니 오리지널 사장님은 나이가 무색하겨 곳곳하시고 고우시고 건강하시다. 아직도 직접 음식을 준비하신단다. 역시 부지런한 성실이 무병장수의 기본 요건이 아닌가 싶다.


고기가 나왔다. 손님이 없으니 따님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신다. 생고기 2인과 양념 1인을 주문했다. 3인분이 기본이다. 1인분에 만원이니 2인이 와서 3만 원 주문이니 1인분 1만 5천 원 되겠다.


연탄불이 밑에 있고 구멍 뚫린 두꺼운 철판 위에 얇게 펴낸 갈비를 올려 굽는다. 이 고기는 냉동이 한 번도 하지 않은 싱싱한 고기다. 그래서 잡내도 전혀 없고 부드럽다. 따로 반찬을 주지도 않는다. 쌈장과 소금, 상추파 무칭이 전부다. 사실 고기 먹을 때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한가.


맛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구순 사장님께 진심의 폴더폰 인사를 한다. 나와 길을 걸으며 계속 우와! 우와! 감탄사만 연발하며 걷는다. 맛있다는 말은 지금의 만족감을 표현할 수 없다. 그저 감탄만 한다. 이제 남해 오면 여기는 무조건 온다. 구순 사장님 내내 건강하세요.


nowelle danse

화항식당 갈비에 취해 두어 블록 걸어서 카페를 찾아갔으나 디저트 케이크가 다 팔려 발길을 돌린다. 화랑식당 근처에서 본 신상 대형카페로 간다. 화환들이 즐비한 것을 보니 신생카페인가 보다.


베이커리 카페를 표방하는데 다양한 스콘들이 인상적이다. 커피와 미숫가루, 팥과 밤이 들어간 스콘을 주문한다. 맛이 괜찮다. 잇츠 오케이. 의자가 아주 큼지막하니 편안한 것도 마음에 든다.


시장집

대체할 수 없는 고향의 맛이 있다. 이 지역에서만 즐겨 먹는 '장어국(장어탕이라고도 부른다)'이란 음식이다. 서울에서는 추어탕이라 부르는 음식이니 경상도식 추어탕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장어국은 붕장어(아나고, 바닷장어)를 삶고 갈아 만든 국물에 우거지를 넣고 끓인 탕이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K의 유년시절 시골집에 오면 할머니가 한솥 끓여 놓고 매끼 맛있게 먹던 음식이다. 여름에는 보양식으로도 좋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에 딱 한 곳 이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 즐겨 찾는다. 여기 남해시장 안에 있는 장어국은 더 소박하다.


주인부부와 가게의 모습도 정겹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노포지만 깔끔하고 깨끗하게 관리해 오신 흔적이 뚜렷하다. 품위 있는 주인 어르신들이시다. 메뉴판도 손글씨로 근사하게 써 놓으셨다. 바깥 사장님께서 왕년에 군대 차트 글씨 좀 쓰셨단다. 손글씨 메뉴판이 신기하니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한다는데, 당신들은 가게가 좁아 많이 와도 수용불가하니 올리지 말라고 하신단다.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 식사하며 주인부부 어른들과 한가로이 남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는 여행은 자꾸 그곳에 스며들려 하려는 것 같다. 보고 떠나는 여행보다 이렇게 머물며 동화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즐겁다. 어제 고깃집 화랑갈비와 함께 남해 필수 방문지로 등록한다. 주인 어르신들 내내 건강하시기 바란다.


카페 파밀리아

케이크가 맛있다고 소문난 카페라 어제 들렀었다. 화랑식당 식사 후 왔는데 케이크가 솔드 아웃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던 디저트 카페를 이번 여행 마지막 디저트 플레이스로 삼는다. 시장집에서 환상적인 식사를 하고 남해시장에서 과일을 잔뜩 샀다. G는 시골시장이라 그런지 가격이 엄청 싸다고 난리다.


주인장 말씀이 치즈케이크가 원탑 인기 메뉴란다. 치즈케이크와 망고 케이크를 주문한다. 주인장 자부심대로 케이크가 맛있다. 우리나라 정말 최고다. 군 단위 지방 마을에도 이 정도 수준 카페가 있다니… 충분히 경쟁력 있는 카페다. 이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이제 남해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간다.


역시, 남해는 오면 올수록 빠져드는 멋진 곳이다. 좀 먼 것이 흠이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게 아쉽게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바이 2025 여름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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