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kjaya Jun 24. 2015

여행 같은 출근길 in 방글라데시

매일매일 릭샤를 타고 골목 골목 여행하듯 가는 출근길.

난 방글라데시에서 릭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자전거 뒤에 앉는 자리가 달린,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

릭샤를 끄는 릭샤왈라들은 하나같이 말랐다. 군살이라곤 없고, 엄청 질겨보이는 잔근육의 소유자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살집이 있는 릭샤왈라는 새내기일 것이다. 그만큼 인력거를 끄는 것은 힘들다.


거리에 따라 돈을 받는데, 건장한 성인 두 명이 타기도 하고 엄청나게 긴 장대 같은 짐이나 무거운 시멘트 포대 같은 걸 들고 타기도 한다. 릭샤왈라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 극한 직업이다.

릭샤 일이 힘든 만큼 릭샤비도 많이 주면 좋겠지만, 매일 릭샤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나는 그럴 수 없다.


한두 명이 많이 주기 시작하면 점점 그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의 릭샤비는 오르게 되고, 다른 곳에서 운영되는 릭샤비와 많이 차이 날 경우 형평성 문제도 있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용 이상의 가격을 부르는 릭샤왈라들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격을 흥정할 때 5 타카(한화70원 정도)를 더 달라고 해도 “나!(싫어요!)” 하고 적정가로 간다는 릭샤꾼을 찾아 탄다. 릭샤비는 릭샤를 타는 사람들이 깨지 않아야 할 규칙 같은 것.


네모 반듯한 빌라들이 주로 모인 빌라촌, 우리 집 앞에서 릭샤를 하나 잡아서 “놋따”라는 곳으로 간다. 집에서 놋따까지 적정가는 30 타카(420원 정도). 그러면 릭샤는 빌라촌을 빠져나가, 아직 개발 중인 공터를 지나서 재래시장 쪽으로 빠진다. 시장길 초입에는 (왜 거기 있는진 모르겠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존경받는 위인 봉고번두 동상이 있다. 진흙 길이지만 재래시장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길이 참 좋다. 출근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며 가며 유심히 본다. 재밌고 신기하다. 방글라데시의 흔한 미용실, 방글라데시의 흔한 용접가게, 방글라데시의 흔한 정육점 등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시장에서 아주 크고 싱싱한 새우 파는 걸 봤다. 태국산 타이거새우 같이 생겼는데... 냉동되지 않은 싱싱한 방글라산... 언제 한 번 사다가  요리해볼까 싶다.


왜 저기 계신지 모를, 방글라데시의 김구 선생 같은 봉고번두.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길을 지나면 큰 길이 나온다. 여기서 길을 건너 더 가야 하는데, 릭샤는 길을 건널 수 없어서 내리고 육교로 길을 건너 다른 릭샤를 잡아탄다. 육교 위에는 구걸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젊은 청년들이 구걸하는 이들에게 돈을 주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이 사람들, 참 착하고 따뜻하다. 


건너서 사무실까지는 20 타카 거리. 우리 집 쪽보다 25 타카, 30 타카 등 높은 가격을 부르는 릭샤꾼들이 더 많다. 이쪽 편에 외국인이 더 많이 살아서 날 보면 호갱님이다 싶은 건지, 우리집 쪽 가격인 30 타카는 숫자 자체가 크게 느껴져서 더 부르지 않는 건지. 이쪽 가격은 금세 5 타카 정도 오를 것 같다.


여기서도 20 타카에 가겠다고 흥정이 되면 올라타고 출발한다. 우리 쪽 길보다 좀 더 가게가 많은 큰 재래시장이 이어지다가, 시멘트 길을 좀 가다 보면 군인들이 경비하는 생활지구에 들어선다. 이곳에 내가 다니는 사무실이 있다. 입구인 군인 경비초소에서부터 몇 분 정도는 숲길 같은 길이 나타난다. 울창한 가로수들이 출근을 환영하며 날 맞아준다. 동남아의 소박하고 예쁜 꽃들. 주황색, 노란색, 자주색 꽃들에 눈과 마음이 정화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에 서너 가지 색 꽃나무가 같이 섞여 있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어렌지먼트 같다. 


그 길을 지나면 13번 길부터 인위적으로 조성된 빌라지구가 시작된다. 양 옆에 골목이 쭈욱 있고 13번, 12번, 11번 길들이 쭉 이어진다. 요즘 나는 13번 길에서 내린다. 내려서 사무실이 있는 4번 길까지 5분 정도 걸어간다. 차를 타다가 릭샤를 타도 보이는 게 많은데, 릭샤를 타다 걸으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딱 4번 길까지 노래 한 곡을 들으며 아침을 만끽한다. 상쾌상쾌상쾌, 상쾌를 가득 채워 으쌰으쌰 하며 6층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간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 정전도 자주 되고 덥고 습하고  정신없지만, 아름답게 채워가고 싶은 하루하루.


빨강, 자주, 노랑, 보라 원색 꽃들이 모여 예쁜 지점.

#출근길 #방글라데시 #해외생활


세 번째 글.

맨발로 길을 걸어가던 소녀

https://brunch.co.kr/@okjaya/3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황금빛 방글라데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