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배낭여행에서 중요한 건 배낭이 무겁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짐을 줄이라는 아내의 반복된 경고에 쫄아서 정작 챙겨야 할 속옷을 빼먹었다. 무조건 다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허탈감과 자괴감에 배낭을 펼쳐 놓고 멍하게 10분은 족히 앉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은 한 권 챙겼다. 잠들기 전까지도 핸드폰을 못 놓으면서 정작 이럴 땐 청개구리처럼 책을 챙겼다. 책으로 속옷을 만들어 입고 싶었다. 속옷을 못 챙겼지만 책은 챙겼으니 대단한 독서광이 아닐 수 없다.
어딜 가나 핸드폰을 하는 사람들뿐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밖에서도 잠시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숨이 막히는 이곳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핸드폰에 고갤 처박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그들을 구경을 하는 내가 있다.
복장도 다양하고 분위기도 다 다르다. 개중에는 과잠을 입고 책을 읽는 귀한 청년도 하나 있다. 그 아름다운 청년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물건을 펼쳐 놓고 무언가를 준비한다. 공교롭게도 지하철 내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아주머니는 방송에 맞춰 방송과는 정반대의 멘트를 유창하게 내뱉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 판매 아주머니와 이를 막으려는 준법 승객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오고가는 고성 속에 승객들은 모두가 불편해졌다. 이럴 땐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청년의 독서도 나의 사람 구경도 방해를 받았다. 하지만 삶의 불편한 순간들을 피한다고 피해지겠는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모두의 삶이 덜 팍팍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여행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건너편에 앉은 아이가 자꾸 날 유혹한다. 같이 놀던 엄마는 잠들었고 창에 비친 자신과 대화하며 1인극을 하는 것도 이젠 지겨운가 보다. 귀여운 자신과 놀아주라며 열심히 귀여운 척하지만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다. 아빠는 지금 모르는 사람과 함께 앉은 이 자리가 너무나 소중하고 편하다. 아이가 안쓰러워 핸드폰이라도 쥐어주고 싶지만 뚝심 있는 아빠는 재밋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귀한 심심함을 제공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던 아름다운 청년을 떠올리며.
열차 안에서 유명 작가의 책을 읽었다. 유명 작가의 책은 얇지만 비싸다. 유명이라서 이름값이 더해진 가격인가 보다. 유명 작가는 작품을 쓸 뿐이다. 작품이 값을 하는지는 그 책을 읽는 무명작가의 몫이다.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한 무명작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