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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by 호방자

오늘따라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덩달아 나도 일찍 깼다. 잠과 친하지 않은 나에게 1분이 소중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아이의 운동회날이기 때문이다.


설레는 그 맘을 모를 리 없다.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옷을 잘 챙겨 입고 궁금하지 않은데도 오늘 있을 일에 대해 재잘재잘 떠든다. 그리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 아빠의 배웅을 해준다.



나는 언제 그렇게 강렬한 설렘을 느껴 봤는지 생각해 본다. 대학생 시절 축구를 사랑했던 나는, 지금도 사랑하지만 그때는 훨씬 더 사랑했던 나는 시합 전날이 그렇게 설렜다. 축구는 22명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시합을 잡는 게 쉽지 않다. 어렵사리 시합이 잡혀도 마음을 졸인다. 한 명이라도 펑크가 날까 노심초사했다. 예고에 없던 비라도 오면,,,,속절없이 내리는 비 사이로 하늘을 보며 욕을 했다.



다행히 비도 안 오고 인원수도 맞으면 그렇게 고대하던 축구를 할 수 있었다. 1교시 전까지 경기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만나야 했다. 그런데 너무 설렌 나머지 축구를 하는 날엔 소풍을 앞둔 유치원생마냥 5시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안 돼 더 자야 돼 그래야 좋은 컨디션으로 뛸 수 있어’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올 리 없다. 그렇게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고 새벽 이슬을 맞으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뛰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난 에이스였다. 포지션을 짤 때도 형들이 넌 알아서 뛰라고 했다. 많이 뛰었다. 내가 이 중에 젤 많이 뛰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뛰었다. 상대가 공격을 하면 우리 진영 깊숙이 들어가서 공을 되찾아 상대방 진영 깊숙이 그 공을 몰고 공격했다. 내가 왜 그랬나 싶지만 난 내가 박지성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왜 그랬나 싶지만 그땐 정말 축구가 좋았다.



그때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신체의 노화에 따른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젠 운동을 할 때 다치면 어떡하나 걱정부터 든다. 서글프다. 그래도 대학 시절의 설렘을 기억한다. 축구화를 신고 운동장에 첫 발을 딛는 느낌, 전력으로 달린 후 폐가 찢어질 것 같던 통증, 격렬하게 부딪치고 넘어지던 감각들이 생생하다.



그래서 좋다. 아주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인생은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노력하고 전념해야 한다. 그래야 진심으로 그것을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다. 아주 생생하게.



남은 나의 삶에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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