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승진 시험

by 호방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옆자리 선생님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셔서 아쉽지만 우리 곁을 떠나실 것 같다.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하시더니 아름답게 합격하셨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우리들은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진다. 다행히 며칠 전 졸업생이 주고 간 롤 케이크가 있었고 초를 꽂아 노래를 불러드렸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선생님께서는 함박웃음으로 답해 주셨다. 이후에도 쏟아지는 동료들의 축하는 선생님의 지난 교직 생활이 지금처럼 한결같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고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본다. 이 자리에서 어떤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교사는 급수가 올라가는 개념이 아니므로 일반 회사처럼 승진에 목을 매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장학사)에 대한 선호가 예전보다 덜한 분위기를 느낀다. 나 역시 승진할 일은 없을 것이다. 큰 책임을 맡을 능력이 부족하고 부족한 능력을 채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아직까지 학생들과 수업하며 부대끼는 것이 좋고,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좋고, 밤에 운동하는 것이 좋다. 그걸 할 수 없는 전문직의 삶이 매력적이지 않다.



꿈꾸는 데 나이가 중요치 않다면서 정년을 1년 앞둔 선생님께서 자신도 내년에 장학사 시험을 볼까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자신의 친구도 합격했다는 선생님의 나이는 30대 중후반이니 그 친구분은 소년 급제라 할 만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소년 급제를 부러워했을 텐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배 아파 했을 텐데, 이제는 나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었음을 알아챘다.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아야지 깊이 새기고 있지만 정말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핸드폰에 팔아버린 나의 영혼이 망령이 되어 오늘 밤 나를 찾아올 것 같다. 며칠 전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외국 대학 박사과정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하는 영어 공부가 힘들다며 굳어버린 머리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날 밤에도 핸드폰 망령은 구천을 떠돌고 있었을 텐데 나는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발전해 가는 교사들도 많다.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 더 잘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노력 역시 꿈을 좇는 아름답고 숭고한 발걸음임에 분명하다.



중요한 건 무엇이 되든 영혼을 팔지 않는 것이다. 승진하고, 시험에 합격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상담을 하고, 일찍 퇴근해서 여가를 즐기고,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이 모든 과정이 나의 행복과 닿아 있어야 한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아야 한다. 시험에 합격하신 선생님은 그래 보였다. 그분이 관리자가 되면 그 학교의 구성원들은 적어도 불행할 것 같지는 않다. 영혼을 팔지 않으실 분이니까.



오늘 밤 나는 구천을 떠도는 내 영혼에게 위로를 건네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막에서 재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