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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교양

by 호방자

학교 짬밥이 쌓여가다 보니 변치 않고 들어맞는 것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3학년을 향해 갈수록 공부를 안 한다, 아이들은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뭐 대충 이러한 것들인데 이 모든 것들은 아이들은 공부하길 싫어한다는 대전제 아래 놓여 있는 것들이다. 찰나의 방학이 끝나고 영겁의 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이들은 변치 않고 책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마 수업을 할 거냐는 단합된 눈빛 또한 예상했던 대로다. 개중 용기 있는 애들은 “수업 해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이런 질문을 받고 감히 니가 뭔데 그걸 물어보냐며 학생의 귀싸대기를 날린 선생님이 있었다. 그런 충격적인 장면들이 내 마음속에 무덤처럼 쌓여 고분이 되어 있다. 나는 그 고분 위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고 글귀를 붙여 주었다. 고로 난 그런 질문을 받아도 신체적 폭력을 가하진 않는다. 눈으로 몇 번 때린 적은 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몇 가지 교양을 준비했다. 교양하다라는 말은 군대에 있을 때 많이 듣던 표현인데 고작 2년 남짓 쓴 말이 왜 이렇게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고참은 임무를 전달할 때 스스로를 주옥같은 교양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당연히 주옥같지 않았지만 그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 꽤나 강렬했다. 암튼, 나도 주옥같진 않아도 교양을 시작한다.



학생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자신과 친구들은 글쓰기 과제를 주면 AI를 이용하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이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세대부터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듣고 보니 그러하다. 지금이야 입학 동기들 간 경쟁이지만 사회에 나가면 위아래 10년은 서로 경쟁자일 텐데, 글쓰기는 해 보지 않고서는 실력이 늘지 않으므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정작 중요한 시험에서는 AI를 이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쓰기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젠 AI 덕분에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글들이 넘쳐날 텐데 그 중에 더 좋은 글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우리에겐 지금보다 더 수준 높은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안목을 갖추지 못하면 AI에게 부탁하며 살아야 한다. AI가 인간보다 못하는 게 있다고 한다. 엉뚱한 상상력, 즉 창의적인 생각이다. 인류의 발전은 그런 질문들을 통해 큰 전환을 맞이했다. 이러한 생각은 열심히 읽고 쓰며 똑똑해져야 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여전히 읽고 쓰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이 표정은 진지하다. 나의 교양이 주옥같았나? ‘주옥같은’을 빨리 발음하면 욕처럼 들린다. 다행히 그러진 않았나 보다. 학기 시작, 뭘 해도 마음이 붕 떠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 고양, 동기 부여 등을 주제로 이야길 해 준다. 이때 제일 잘 먹히는 내용들이다. 마음을 새로 고쳐먹고 뭔가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얼마 못 간다. 이 또한 늘 그렇다. 그래도 나는 한다. 아이들의 삶이 언제 주옥처럼 변할지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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