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오면 학급 칠판이 종종 보인다. 주로 오늘의 급식, 날씨, 알 수 없는 유명인들의 명언 등이 적혀 있다. 오늘 2반의 뉴스는 ‘박민우 게이 아님’이고, 오노추(오늘의 노래 추천인 듯)는 엠씨더맥스의 ‘원러브’이다.(아이들은 의외로 옛날 노래를 많이 듣는다.) 중간고사는 D-7이고, 오늘의 날씨는??? ‘살 만함’이다.
열사의 땅이 되어버린 8월, 사납던 태양도 이젠 한풀 꺾이고 아침 저녁 선선한 기운이 낯설다. 귀뚜라미도 살 만한지 아침부터 울어 댄다. 저 멀리 지저귀는 새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건 창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고, 창문을 열었다는 건 열어도 될 만한 날씨, 살 만한 날씨라는 뜻이다.
연배가 있으신 선생님들과 식사를 하였다. 지금이 우리나라가 가장 살 만한 때라고 말씀하셨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은 부모에 비해 자신들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고, 지금 세대는 자신들보다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고민 역시 더 잘 살아보기 위한 것들이지 생존을 위한 고민은 아니다. 당장 한, 두 세대만 위로 올라가더라도 생존을 걱정했던 시기가 있었으니, 우리는 상대적으로 살 만한 세월을 살고 있다.
아침을 분주하게 움직였더니 반팔을 입었는데도 땀이 흘렀다. 다행히 날씨가 시원해 땀이 금세 말랐다. 땀도 잘 마르고 살 만한 세월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지옥 불과도 같지만 살 만하다고 생각하면 아침 귀뚜라미 소리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지만 지금 눈앞의 9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