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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by 호방자

정보의 과잉 시대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궁금한 내용들을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어제 퇴근하며 전미총기협회, 벤츠 마이바흐, 음주 운전 형량 등에 관한 궁금증을 챗GPT를 통해 해결했다. 여기까진 내가 궁금해서 알아본 내용이다. 그런데 밤에, 항상 꼭 밤에,,,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내용들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손가락 하나에 쏟아지는 그 정보들이 너무 치명적이고 중독적이다.


결과적으로 굳이 몰라도 되는 것들이었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 보고 난 뒤 허탈했던 감정은 기억이 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노리고 지금도 수많은 정보들을 짧고 자극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숏츠를 보지 말라는 뇌과학자의 메시지를 숏츠로 봤다. 긴 걸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게 핵심이었는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스스로를 반성한다. 나는 왜 굳이 몰라도 되는 내용들을 굳이 빠른 배속까지 켜가며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가. 그러면서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것은 무슨 심리인가? 마음의 위안인 건가? 삶의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것만 같다. 그러는 사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9월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앞자리 선생님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도서관에서 빌려 오셨다. 책을 너무 안 읽어서 읽어보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별안간 독서욕이 샘 솟았다. 얼마 전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를 읽다 실패했다. 내가 아는 그리스인은 소크라테스 정도로 충분한데 조르바가 누구인지 500페이지는 너무한 거 아닌가?



숏츠보다 재미는 없겠지만 좀 참고 견뎌 보련다. 바쁜 마음과 정신이 조금이나마 제 자리를 찾아가길 바라며. 깊이 생각하는 법을 잊는 내 머리가 천천히 사유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삶의 나침반을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틀어져 있는 걸 알면서도 돌려놓지 못했다. 가벼워진 나의 삶이 책을 통해 무거워지도록. 그리스인 조르바는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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