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드디어 시험기간이 왔다. 기말시험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잘 넘어야 포근한 연말을 맞을 수 있으므로 작은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태양이 이글거리는 남녘 땅에 가 있고, 초점 잃은 영혼은 시험지 주변을 맴돈다. 헝클어진 마음을 다시금 고쳐 잡아 시험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시험 기간인 오늘 나에게는 모두가 기피하는 학년의 자습 감독이 주어졌다. 기피 이유는 현재 그 학년 아이들이 힘들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쉽지 않구나’ 싶은 분위기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수업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선입견으로 바라본 나의 삐뚤어진 시각이 잔뜩 묻어 있다.
감독에 임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쉬지 않고 순회하며 소란의 싹을 미연에 잘라버리는 것, 둘째는 교실 문을 닫은 후 나의 눈과 귀까지 닫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청춘을 걸고 시험에 도전하고 있을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도 할 겸 계속 복도를 순회했다. 날이 추우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나았다. 창문을 통해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쉽지 않은 아이들의 몸이 반쯤 돌아가 있다. 내가 지나가면 나머지 몸 절반을 언제든 돌릴 기세다. 나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창문을 통해 눈빛을 쏘았다. 그래도 떠드는 반은 직접 들어가 주의를 줬다. 공부하고 싶은 애들 방해하면 안 된다고.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물론 떠드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자습 시간에는 떠드는 것보다 공부가 우선이다. 그 시간에 떠드는 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신체적, 물질적 피해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 정신도 피해받을 수 있다.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걸 아이들은 모른다. 웃고 떠들고,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것도 피해를 주는 일이다.
같은 학급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유난 떠는 애, 재수 없는 애로 찍힐까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공부하고 싶으면 마음껏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제 한 시간을 노력했다. 공부하기 위해 다른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분위기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떠들던 아이들은 얼마 안 가 엎드려 잠을 잤다. 이 아이들도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이다. 편협한 잣대로 선입견을 가지고 쳐다본 건 미안하다. 그 아이들도 질 좋은 수면을 취했길 바란다. 그래 학교는 잠자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