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갔다. 갑자기 주어진 너무 많은 시간과 자유, 선택지가 많아서 인생이 힘들어졌다. 고등학교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면 끝이었는데 이젠 다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어이없게도 고등학교처럼 시간표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인 건 열심히 살았던 버릇이 남아서인지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싫었다. 그래서 두렵지만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 실패도 해봤다. 그렇게 나름의 소설 한 편을 써낸 후 어엿하게 밥법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겉은 멀쩡해 보여도 누구나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사는 게 우리의 삶 아닐까? 나 역시 많은 고통과 괴로움, 시궁창에 처박히는 경험을 하였다. 시련을 겪은 뒤 단단해진다는 말도 있지만 그 정도의 처참한 시련은 겪지 않는 게 정신적으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상처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다만 이 과정이 인간 대부분이 겪는 일련의 성장통과 같은 것이라면 조금의 위안이 된다. 왜 우리는 모르는 이의 성공담에 감동받는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누에들은 은수자(隱修者)다. 자승자박의 흰 동굴로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몸을 감춘다. 혼자 웅크린 번데기의 시간에 존재의 변모는 시작된다. 세포들이 다시 배열되고 없었던 날개가 창조된다. 이 신비로운 변모가 꿈의 힘 없이 가능했을까. 어느 날 해맑은 아침의 얼굴이 동굴을 열고 나온다. 회저처럼 고통스러웠던 연금술의 긴 밤을 지나 비로소 하늘 백성의 날갯짓이 시작되는 것이다. 밖에서 구멍을 뚫어주는 누에의 왕은 없다. 누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하며 안쪽에서 뚫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최승호, 「누에」
최승호 시인의 ‘누에’는 문제를 맞혀 정복해야 할 적이 아니라 위로받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애벌레가 스스로를 옭아 매어 번데기가 되고 회저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 나비가 된다. 그리고 하늘을 꿈꾸던 하늘 백성이 된다. 누에는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깜깜하고 긴 터널을 지날 때에는 두 가지 생각만 붙잡고 가면 된다. 언젠가 이 터널은 끝난다는 것, 지금 멈추면 터널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 나머지 수만 가지 생각은 터널을 빠져나온 후 해도 늦지 않다.’
앞이 보이지 않던 시기에 습관처럼 되뇌던 말들이다. 지금 나의 노력이 당장 눈앞에 보일 리 없다. 보인다면 그건 가짜다. 어릴 적 사진을 보라. 하루하루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이만큼 자랐다. 상상해 보자. 지금 노력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포들이 다시 배열되고 없었던 날개가 창조되고 있다는 것을. 그런 기대와 희망 없이 이 각박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