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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방자 Nov 20. 2024

외계인 침공2

현재 국어과 부장을 맡고 있다. 자료 수합, 회의 참석, 국어과 의사를 대변하는 일 등을 한다. 학교에서는 학년말이 되면 내년 교사 정원과 시수를 정하게 된다. 교사 정원이 줄고 있다. 누군가는 의사에 반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인원이 줄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첨예한 이해 관계 속에서 각 과의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최종 보스다. 강력한 힘 앞에 교사들의 하소연은 힘없이 바스러진다.   


       

국어과에 무리한 요구를 하셨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다른 과에서도 그건 너무했다라는 요구였다. 외계인 침공에 국어 연합군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연합군은 알고 있었다. 외계인을 무찌르는 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임을. 교장실에 들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나왔지만 찝찝하고 기분이 더럽다. 논리적 우위에 서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관철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외계인을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적정 시간을 초과하여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틀간 글을 쓰지 못했다. 능력도 안 되는 게 뽑기까지 못해서 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버렸다. 아는 게 없으니 더 열심히 의견을 듣고 전달해야 했다. 외계인 생각에 잠을 설치며 아내에게 흉통을 호소해야 했다. 억울하다. 

         

그럼에도 날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있다. 연대하는 따뜻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 침공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업무 담당자 선생님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외계인이 알리지 말라는 정보도 슬쩍 흘려주신다. 나의 전화에 친절하게 답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우리도 잘 안다. 그분은 부역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것을. 방금 전 만났을 때도 방긋 웃어주셨다. 덕분에 나도 오늘 학교에서 처음 웃었다.          



3학년은 대형 피씨방을 차렸다. 교육청에서 태블릿을 지급한 게 이런 복지를 노린 포석이었는지 모른다. 작년에 수업을 함께 했던 아이를 만났다. 결과를 물어보지 않는 게 세련된 교사라고 생각하지만 난 세련되지 않아 잘 봤냐고 인사했다. 가는 길에 졸졸 따라오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 자세히 물었더니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다 수줍게 번호를 물어보길래 시원하게 눌러줬다. 덕분에 오늘 학교에서 두 번째로 웃었다. 


         

원래 30명의 아이들 중 한 명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29명에게 좋은 감정을 느껴도 한 명이 모든 걸 뒤덮어 버린다. 나쁜 감정은 그만큼 힘이 세다. 그러니 나쁜 감정을 남에게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린 보석처럼 숨어 있는 수많은 좋은 감정을 발견해야 한다. 좋은 감정들이 모여야 나쁜 감정의 침공을 이겨낼 수 있다.


      

외계인 꺼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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