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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by 호방자

최근 지인이 남미로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좋아했다고 한다. 여행 유튜브를 봐도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이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현지인 가이드들이 많이 쓰는 단어가 있었는데 ‘빨리빨리’가 그것이다.



‘빨리빨리’의 문화가 언제부터 한국인의 사고를 잠식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빨리빨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로에 차가 많을 때는 바로 차선을 바꿔줘야 하고, 식당에서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면 직원을 불러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우리들에게 셀프 주유기는 이렇게 일갈한다.



“나오는 중이니 잡아 당기지 마세요.”



빨리빨리 문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전후 폐허가 된 땅 위에 기적과 같은 일들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다른 나라를 따라가야 했고 거기에 특화된 인재를 얻기 위해 학교에서도 치열하게 경쟁을 시켰다. 그리고 더 빨리 성과를 내는 인재를 찾는 데 몰두했다. 빨리빨리의 성과는 대단했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국 청소년들이 행복하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두가 빨리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너와 나의 생김새가 다르듯 우리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빨리 잘하는 친구도 있지만 천천히 잘하는 친구도 있다. 우리 사회는 천천히 잘하는 친구들의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길게 봐야 한다는데, 길게 보면 빠른 애나 느린 애나 결국 거기서 거기고 비슷한 곳에서 만나는 것 같지 않은가? 빠른 애는 빨라서, 느린 애는 느려서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 사회는 문제가 있다.



아이가 잘못을 해서 뭘 잘못했는지 물어봤다. 대답이 없길래 다그쳤다. 왜 대답을 못하냐고. 수업 중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학생은 답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 친구들은 그 시간을 지겨워하고 교사는 결국 자신이 답을 말해 버렸다. 우리가 시간을 더 주었다면 아이는 뭘 잘못했는지, 학생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답하는 것만 같다.



“생각하는 중이니 다그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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