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우리 애가 영어가 부족해요.

by 호방자

학창 시절 우리 학교는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혈기가 넘쳐 계단을 두 칸 세칸 씩 오르던 그 시절, 이상하게도 그 언덕을 오를 때면 늘 숨이 턱 막혔다. 마음의 병을 앓았던 것 같다. 지옥 같았고 감옥 같았다. 언덕을 오르며 먼 훗날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부디 내 자식의 청소년기는 이렇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었다. 지금 학생들에게 이 언덕의 가파름은 얼마큼의 힘듦일까? 야만과 낭만이 공존했던 그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나도 부모가 되었다.


“어머님, 우리 00가 영어가 좀 부족해요.”


아내가 유치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급히 나에게 톡을 한다. 평소 나는 지나친 사교육을 경계하는 사람이라 일단 내뱉고 본다.


“아니, 건강하게만 크면 됐지. 지금은 영어가 중요한 게 아니야.”

물론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뒤의 아내 말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00가 자기만 못한다고 스트레스 받을까봐 그러지.”


이건 예상에 없던 거다. 나는 영어 한 글자를 더 아는 것보다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을 즐기고 행복하게 크길 바랐다. 지식의 크기보다 생각 주머니의 크기를 키워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자신감 없는 아이가 될까 걱정이라고?

결국 우리 잘못이었다. 우린 지금 이 유치원이 우리의 교육관과 잘 맞지 않음을 알고서도 출퇴근 동선을 고려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교육관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관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아이도, 부모도 괴롭지 않다. 물론 그 교육관은 많은 고민의 결과여야 하고, 꾸준한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고, 수정 가능한 유연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영어 보충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닌 영어 공부를 한 번씩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절대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아이가 영어를 말할 때 아낌없이 칭찬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지금 이 시기에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즐겁게 추억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많이 상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뒤처지는 것 같아도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먼 훗날 내 아이도 힘든 날이 올 것이다. 바로 그때, 자신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부딪치고 도전해야 할 때, 오늘 배운 영어 단어가 도움이 될지 오늘 아빠와 웃고 떠든 추억이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본다. 아이보다 오래 산 만큼 부모는 더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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