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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by 호방자

작년 내가 맡은 업무가 다른 선생님들에게 넘어갔다. 교사의 업무가 바뀌는 건 으레 있는 일이므로 인수인계를 준비한다. 나는 작년 담당 선생님들에게 파일을 받는 것으로 인수가 끝났지만 나는 직접 찾아가 설명을 드렸다. 내 업무가 세 분에게 찢어진 관계로 일일이 찾아가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새로운 업무 앞에 덩그러니 놓인 막막함을 잘 알기에 기꺼이 감수하였다.



금요일 퇴근길에 교감 선생님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올해 새롭게 업무를 맡으신 선생님이 업무 파악에 곤람함이 있으니 살펴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몇 시간 전 나에게 문의를 하셨는데 나의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전화를 받았을 때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대답을 속 시원히 못 해 드렸다. 나이도 있으시고 어려움이 있으셨을 텐데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학기 초라 바쁘고 해서 적당히 선을 그었는데 그게 주말 내내 마음에 걸렸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서 전화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그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료도 넘겼으니 할 건 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이므로 착한 짓을 하려고 한다. 착하게 산다고 복을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삶은 부조리한 것이다.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경험도 흔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권선징악은 당위적 법칙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 또는 우리의 소망일 뿐이다.



그래도 착하게 살려고 한다. 부조리한 인생 속에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깨달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권선징악은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해 볼 만한 인생의 선택지이다. 오늘 내가 베푼 선함이 언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 비합리적이지만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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