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 치과에 갔습니다. 스케일링 예약이 있어서 말이죠.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서야 하는 바람에 아침부터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이를 깨끗하게 해야지'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치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환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있더군요. 왜 이렇게 분위기가 무거울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진료실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으아아아악! 싫어! 하지 마!"
처음에는 여자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비명 소리가 보통이 아니었어요. 마치 무슨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절규하는 소리였거든요. 대기실에 앉아 있던 우리 모든 환자들은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저 애 뭔 일 당하고 있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렸죠.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스케일링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소리는 계속됐습니다. 그것도 점점 더 커지면서 말이죠. 마치 드라마의 절정 부분처럼 감정이 고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치과 의사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자, 그냥 입만 벌려보자.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 아이는 치과 의사 선생님이 입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공포에 질려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거였어요.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죠.
결국 진료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오늘은 진료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가 너무 무서워해서요."
제가 나갈 때 보니, 그 '공포의 주인공'은 6~7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고, 어머니 품에 매달려 있더군요. 충치 때문에 온 것 같았는데, 결국 치료는 받지 못하고 집에 가야 했습니다.
신기한 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치과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분들이 웃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닐 테니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났구나" 하는 표정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환자들은 달랐습니다. 다들 벌벌 떨고 있었거든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아이의 공포가 전염된 것처럼, 갑자기 스케일링이 무섭게 느껴졌어요.
'어른인 나도 이런데, 저 아이는 오죽할까.'
사실 치과가 무서운 건 저만의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과에 가는 걸 싫어하죠. 그 특유의 기계 소리, 입 안에서 뭔가를 긁어내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아플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치료받는 게 나중에 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덜 아플 텐데 말이죠. 충치는 저절로 낫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더 아파집니다.
그 아이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겁니다. 지금의 이 작은 용기가 나중의 큰 고통을 막아준다는 것을.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당장은 무섭고 힘들어도, 피해야 할 것들을 제때 마주하는 게 결국 더 나은 선택인 경우가 많죠.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농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그 아이 때문에 무서우시죠? 걱정 마세요. 어른들은 대부분 괜찮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도 좀 무서워요. 그 애 덕분에 더 무서워졌어요."
"하하,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근데 막상 해보시면 별거 아니에요."
정말 별거 아니었습니다. 10분 정도면 끝나는 간단한 스케일링이었거든요.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그 아이의 공포는 대부분 상상 속에서 나온 것이었겠구나 싶더군요.
치과를 나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치과 같은 일들'이 참 많다는 것. 미루고 싶고, 피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해야 하는 일들 말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끔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리미리 챙겨두는 게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는 걸 막아주죠.
그 6살 남자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
"괜찮아, 생각보다 별거 아냐. 그리고 이걸 이겨내면 네가 더 단단해질 거야."
인생은 결국 이런 작은 용기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치과 의자에 앉는 작은 용기부터 시작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