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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합격 문서의 패턴 3레벨

- AI와 평가위원이 동시에 좋아하는 문서의 비밀-

by 여철기 글쓰기

[3레벨 구조 : 건축처럼 쌓아 올려라]


좋은 건물은 기초, 골조, 마감이 모두 탄탄합니다. 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간 선정된 계획서들을 분석한 결과, 70점 이상 받은 문서는 거의 대부분 세 가지 층위가 모두 견고했습니다. 거시 구조는 전체 흐름을 만들고, 중간 구조는 논리를 연결하고, 미시 구조는 문장을 다듬습니다. 반대로 70점 이하 문서는 어느 한 층위가 무너져 있었죠. (R&D지원사업은 70점이 커트라인입니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탈락 문서가 "내용은 좋은데 구조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는 겁니다. 기술력은 있는데 전달력이 없었던 거죠.


[Level 1 : 거시 구조 - 결론부터 말하라]


평가위원은 바쁩니다. 첫 페이지에서 "이 계획서가 뭘 하겠다는 건지" 파악 못 하면 나머지를 안 읽습니다.


피라미드 원칙은 간단합니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맨 위에 놓는 겁니다. 그 아래에 뒷받침하는 근거를 배치하고요.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3년간 AI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특허 5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장 조사 결과 수요가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본 과제를 통해 자율주행 검사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합니다"라고 쓰면 평가위원은 끝까지 읽고 나서야 "아, 자율주행 검사 시스템 만들겠다는 거구나"라고 깨닫습니다. 20초가 걸리죠.


하지만 이렇게 쓰면 어떨까요? "본 과제는 AI 기반 자율주행 검사 시스템 개발로 연간 5억원 시장을 창출합니다. 핵심 기술은 특허 5건 보유에 정확도 98.2%이며, 3개 기업이 도입을 확약했습니다. 개발 기간은 24개월입니다." 5초 만에 전부 파악됩니다.


요약 페이지는 결론에서 시작해서 핵심 근거 세 가지를 보여주고 기대효과로 끝나야 합니다. 각 섹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소결론을 먼저 던지고, 상세 설명을 이어가고, 데이터로 마무리하세요. 심지어 단락도 주제문이 맨 앞에 오고 뒷받침 문장 두세 개가 따라오는 구조가 가장 읽기 쉽습니다.


[Level 2 : 중간 구조 - 논리가 보여야 설득된다]


거시 구조가 "무엇을"이라면, 중간 구조는 "어떻게"입니다. 주장만 나열하면 공허하고, 근거만 쌓으면 산만합니다.


"우리 기술은 시장성이 우수합니다. 경쟁력도 높습니다. 확장성도 뛰어납니다"라고 쓰면 평가위원은 "말은 좋은데, 증거는?"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도는 30%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주장과 근거와 결론을 세트로 묶으면 달라집니다. "우리 기술은 글로벌 시장 진입이 가능합니다"라는 주장 뒤에 "일본 A사와 기술 검증 완료했고, 유럽 CE 인증을 취득했으며, 미국 B사 파일럿 테스트가 진행 중"이라는 근거를 붙입니다. 그리고 "따라서 24개월 내 3개국 수출 달성이 가능합니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거죠. 신뢰도는 85%로 올라갑니다.


설명할 것을 나눌 때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겹치지 않으면서 빠짐없이 나눠야 합니다. "AI 알고리즘 개발, 딥러닝 모델 구축, 데이터 수집, 성능 개선"이라고 쓰면 AI와 딥러닝이 겹치고 하드웨어는 빠집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하드웨어 개발, 데이터 구축, 성능 검증"처럼 나누면 겹침 없이 전체를 커버하죠.


[Level 3 : 미시 구조 - 문장이 명확해야 읽힌다]


아무리 구조가 좋아도 문장이 애매하면 평가위원은 멈칫합니다.


"본 기술에 의해 생산성 향상이 기대됨"보다 "본 기술은 생산성을 42% 향상시킵니다"가 훨씬 명확합니다. 능동형 문장이 수동형보다 2배 빠르게 읽히거든요.


"다양한 산업에 적용 가능"이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3대 산업에 적용"이라고 구체적으로 쓰세요. "빠른 처리 속도"보다 "0.3초 이내 실시간 처리"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문장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본 과제는 AI 기반 검사 시스템을 개발하여 불량률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며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라는 73자 문장은 읽다가 숨이 찹니다. "본 과제는 AI 검사 시스템을 개발합니다. 불량률 5%에서 1%로 감소, 비용 30% 절감을 목표로 합니다"처럼 두 문장으로 나누면 훨씬 편하죠.


그리고 용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써야 합니다. 처음 "AI 검사 시스템"이라 했으면 끝까지 그 표현을 쓰세요. 갑자기 "인공지능 품질관리 솔루션"이나 "스마트 검증 플랫폼"으로 바꾸면 평가위원은 "어? 이게 다른 건가?"라고 혼란스러워합니다.


[구조가 점수를 만든다]


2024년 11월, C기업은 같은 기술로 두 번째 도전했습니다. 1차 때는 62점으로 탈락했습니다. 결론이 3페이지에 등장했고, 주장만 나열했으며, 한 문장이 60자가 넘었습니다.


2차 때는 3레벨을 모두 개선했습니다. 첫 페이지에 결론과 핵심 근거 세 개를 배치했고, 모든 주장에 근거와 출처를 달았으며, 문장을 40자 이내로 줄이고 정량화를 100% 적용했습니다. 84점을 받았습니다.


같은 기술, 같은 예산이었습니다. 22점 차이는 문서 구조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당장 해볼 것]


합격하는 계획서는 세 가지 층위가 모두 견고합니다. 거시 구조는 평가위원이 5초 만에 핵심을 파악하게 하고, 중간 구조는 논리적 설득력을 만들며, 미시 구조는 읽는 피로도를 최소화합니다.


당신의 다음 계획서를 펼쳐보세요. 첫 페이지에 결론이 있나요? 모든 주장에 근거가 붙어 있나요? 문장이 40자 이내인가요? 이 세 가지만 점검해도 점수는 올라갑니다.


좋은 기술도 구조 없이는 묻힙니다. 구조가 바뀌면 점수가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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