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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단상 32. 1000억 원과 1000년의 삶

by 여철기 글쓰기

한때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게 1억 원이 있다면? 10억이라면? 100억이라면?


1억 원쯤은 금방이었다.
집을 사고, 차를 바꾸고, 여행을 떠난다.
10억 원이면 조금 더 여유롭게,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다.

100억 원까지는 그럭저럭 손꼽을 수 있었다.
사업을 하거나, 기부를 하거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그런데 1000억 원부터는 감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막연해진다.

1조 원, 10조 원...
숫자만 커질 뿐,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거리.
그 간격이 너무 멀어져 버렸다.


그때 문득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사람이 100살이 아니라 1000살을 살 수 있다면?
혹은 10000살까지 산다면?

그 긴 시간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처음 100년은 배우고,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며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다음 100년은?
그다음 1000년은?

시간이 너무 많아지면,
무엇이 의미 있고, 무엇이 지루한지도
점점 구분이 어려워질 것이다.


돈도, 시간도 결국은 비슷한 것 같다.
어느 선을 넘어서면 풍족함이 아니라 막연함이 찾아온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가 아니라,
지금 가진 것으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인 것 같다.

100억이든 10억이든,
100년이든 50년이든,
유한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일.
그것이 인생을 풍족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서 여전히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부자이고,
진짜 오래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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