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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단상 33. 송사리가 알려준 창업과 지역의 법칙

by 여철기 글쓰기

동네 하천을 따라 걷다가 발길이 멈췄다.
맑은 물 사이로 작은 송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릴 적에는 흔하던 풍경이지만,
요즘엔 보기 어려워져서 괜히 반가웠다.

이 하천은 물의 변덕이 심하다.
가뭄이 길면 바닥이 드러나고,
장마철엔 사람도 휩쓸릴 만큼 불어난다.
어떤 날은 녹조가 끼고 냄새가 나지만,
비가 온 뒤에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그 극심한 변화 속에서도
송사리들은 어떻게든 이곳에 모여 살고 있었다.


가만히 물가에 앉아 생각했다.
억지로 인공 연못을 만든다면,
저 물고기들이 과연 이곳으로 올까?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작은 생명들이 이 하천까지 찾아온 이유는
누군가가 물을 끌어온 것도, 먹이를 준 것도 아니다.
그저 ‘살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레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천은 그저 본래의 흐름을 회복했을 뿐이다.
물이 고이지 않고, 오염이 덜하고,
비가 오면 맑아지고, 건기에도 조금은 남아 있는 정도.
그 단순한 자연의 조건이 송사리를 불러왔다.


문득 다른 것들이 떠올랐다.

요즘 우리는 지역과 창업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든다.
지원금, 교육, 인프라, 공간, 홍보…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쉽게 모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어쩌면 하천의 생태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물을 채운 인공 연못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곧 썩는다.
물고기들은 잠깐 머물다 떠난다.
그곳엔 생태가 아니라 구조만 있다.

지역도, 창업도, 결국은 생태의 문제다.
억지로 머물게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게 진짜 ‘살리는 일’ 아닐까.


다시 하천을 본다.
맑은 물이 스스로 길을 찾고,
송사리들이 그 길을 따라 모여든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생명은 흐름을 따른다.

지역도, 사람도, 창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흐름’을 만들면 살아난다.

억지로 끌어들이려 하기보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


송사리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느긋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부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진짜 개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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