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 업계가 다시 한 번 뒤집어졌습니다.
앤트로픽이 1월에 내놓은 클로드 코워크라는 도구 때문입니다. 컴퓨터 안의 파일을 직접 읽고, 수정하고, 만들어주는 에이전트. 영수증 사진 폴더를 건네면 경비 보고서를 알아서 만들고, 법률 문서 수십 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월스트리트는 더 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주가도 크게 요동쳤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소프트웨어의 딥시크 모멘트"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제 모든 일은 동시에, 빠르게, 병렬로 처리되는 게 정답일까.
코워크의 핵심 강점 중 하나가 병렬처리라고 합니다. 독립적인 하위 작업이 있으면 여러 개의 AI 인스턴스를 동시에 띄워서 한꺼번에 끝냅니다. 수백 개의 파일을 분류하거나, 데이터를 뽑아 스프레드시트를 만드는 일에는 확실히 위력적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숨을 고르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게 쪼개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는 이런 일을 '순렬처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병렬의 반대말이 아니라, 순서가 곧 본질인 작업이라는 뜻에서요.
대표적인 예가 글쓰기입니다.
첫 문장이 두 번째 문장의 방향을 결정하고, 앞 문단의 흐름이 뒷 문단의 온도를 만듭니다. 서론에서 던진 질문이 결론에서 변주되면서 독자에게 울림을 줍니다. 이걸 A 파트, B 파트로 쪼개서 동시에 맡기면, 각 조각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그 사이의 '결'이 사라집니다.
글을 쓰다 보면, 처음 의도와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할 때가 있습니다. 앞 문장을 쓰면서 생긴 망설임이 다음 문장의 겸손함이 되고, 중반부에 확신이 붙으면서 문체가 단단해지는 순간. 그건 비효율이 아니라, 생각이 익어가는 과정입니다.
13년간 사업계획서를 쓰고 검토해온 경험에서도 같은 걸 느낍니다. 핵심 가치를 먼저 정의하고, 그 위에 시장 분석이 올라가고, 거기서 도출된 전략이 재무 계획으로 이어지는 흐름. 각 파트를 따로 만들어 나중에 합치면, 읽는 사람이 바로 느낍니다. 뭔가 매끄러운데 설득이 안 된다고. 그건 순서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도 AI를 매일 씁니다. AI 기반 사업계획서 자동생성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술의 힘을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파일 수백 개를 정리하는 일은 AI가 잘합니다. 그러나 한 편의 글에 깃든 작가의 숨결까지 병렬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기존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죽는다는 말이 돌지만, 어쩌면 사라지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모든 일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릅니다.
빠르게 달려야 할 때가 있고, 천천히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코워크의 등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일에 어떤 방식이 맞는가"일 겁니다.
속도의 시대에도, 순서를 밟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이 조금 안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