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식이 있는 날이고 기간제교사 종료일이다. 출근하기 위해서 막 나가려는데 남편이 어두운 얼굴로 들어온다.
"차가 방전되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전화를 한다. 서비스 차량이 전주에서 출발하게 되면 출근길 구이까지는 족히 30분 이상은 소요될 텐데 남편 앞에서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출근 시간이 넘어가는데 남편의 애타는 마음은 나보다 더할게 틀림없다.
"잘 한다고 한 것이 문제가 되어버렸네. 그냥 둘 것을...."
"그냥 두었더라면 내 차로라도 데려다주지. 그런데 저렇게 차를 돌려놓고 길을 막고 있으니 꼼짝을 못하잖아."
그러잖아도 어제 퇴근하고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내다보는데 다른 때 같지 않게 출근할 때 곧바로 내려갈 수 있도록 차를 돌려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 출근을 위해 남편이 특별히 마음을 써주었구나.' 생각했었다.
"차를 돌려놓고 전면 카바 고리를 양쪽 앞문에 끼웠는데 그 때 잘 안 닫혔나봐"
우리 아이들의 정성어린 사랑
이른 아침부터 와 있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다른 때보다 서둘렀던 건데 예기치 못한 변수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옆 도서관에서 이른 아침 잠시 아이들을 관리해주는 실무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와 있을 텐데 교실 불과 난방을 틀어달라고 하자 흔쾌히 알았다며 염려말라 한다.
사실 어제 아침에도 헤어질 선생님을 위해 몇 아이가 이른 시각에 등교해서 칠판을 꾸며놓고 선생님을 놀라게 해준다며 어두운 교실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더 많은 아이들이 올 걸 예상해서 서둘렀던 건데 가는 날이 장날이 되어버린 셈이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서비스 차량이 와서 충전을 시켜주었다. 남편의 표정이 그제서야 밝아지면서
"잘 다녀와!"라며 배웅을 해준다.
'그래,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야. 수업시작 전에는 들어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거지. 오늘 아침 나보다도 더 가슴을 조였을 남편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출근하는 와이프를 위해 3개월 동안 애썼는데......'
출근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침마다 와이프 출근을 위해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 나가 한겨울 언 차량을 손질, 난방까지 틀어서 따뜻하게 출근하도록 배려해 준 남편이었다. 남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출근할 수 있었는데 오늘 하루 늦었다고 남편을 탓하고 싶지 않았고 탓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으니 애를 태우거나 조급함이 없어진 내 모습을 발견하고 젊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여유로운 생각이 좋았다. 한창 젊어 출근할 때였다면 애쓰는 남편은 뒷전이고 내 애타는 감정부터 앞세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표출했을 텐데..... 그만큼 남편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출처 픽사베이
작년 초 남편의 생일 선물로 소가죽 핸드폰 케이스를 검색하다 좋다는 후기 평들을 보고 구입했는데 도착한 물건을 본 남편이 가죽이 아니란다. 그래서 가격을 조금 더 주고 천연가죽이라는 핸드폰 케이스를 추가로 구입해서 보여준 뒤 남편에게
"여보, 필요할 때 여기서 꺼내 써."라고 분명히 말하고 쉽게 꺼내 쓸 곳에 끼워둔다고 한 것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의 말대로 처음에 구입한 천연소가죽이라는 케이스가 얼마 가지 않아 가장자리가 헤어지기 시작해서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너덜거리는 모습에 찾기 시작한 추가 케이스는 해가 바뀌었음에도 나타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박스 채 두어서 있을 만한 곳은 모두 뒤지고 헤쳐서 샅샅이 찾았는데도 보이지 않으니 혹시 내가 모르고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찾아도 없으니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 분명히 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대부분 찾았을 때 없다가도 일정 기간 지나면 생각이 나거나 어디선가에서 나온다는 것에는 지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잘 둔다고 한 것이 늘 문제야. 그런데 나중에 어디선가 나와!"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어디선가 나올만한 시기도 충분히 지났고 오랜 시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으니 도대체 어디 들어가서 꼭꼭 숨어있는 걸까? 분명히 거실 쇼파에 앉아있는 남편을 향해서 필요할 때 꺼내쓰라며 쉽게 보이는 곳에 쑥 꽂아놓은 것 같은데.....
상황은 다르지만 남편의 잘하려는 마음이 되려 방전되게 한 것처럼 핸드폰 케이스를 추가로 구입해서 필요할 때 언제든 교체하라고 배려한 내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전으로 인해 다른 때보다 40분 정도 늦은 시각에 출근했지만 남편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동안의 배려와 오늘 아침 애쓴 남편이 오히려 감사했다.
남편도 내 마음을 아는 듯
"어디선가 나오겠지..."라는 말로 위로하나 핸드폰 기기를 교체하기 전에 사용해야 하는데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정말 생각지 않게 어느 날 문득 어디선가 핸드폰 케이스가 불쑥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정말 반갑고 고마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