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집 아저씨

한파 속 김장 배추

by 이옥임

새해가 시작되고 1월 3일 방학식 후 김장을 한다는 계획을 가족과 동생들에게 진작에 말해둔 상태였다. 기온이 하강할 때마다 우리 밭의 배추가 염려되어 노심초사하시는 아저씨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비닐 씌워두면 괜찮다며 김장할 때 뽑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12월 중순이 넘어가자 뒷집 아저씨와 함께 김장용 배추를 뽑아서 비닐하우스 한쪽에 가식해 두고 아직 속이 차지 않은 배추는 비닐로 덮어두었다고 한다.


이른 새벽 남편은 로컬푸드 임원으로 출장을 떠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 시각인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어둠발이 채 가시기도 전 새벽녘 급 두려운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보는데 코로나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통으로 입는 하양 위생복 같은 보온 복장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눈만 내놓고 계신 분이 서 계셔셔서 깜짝 놀랐다.


"김장 언제 해요?"


목소리를 듣고서야 뒷집 아저씨라는 것을 알았고 1월 3일 할 예정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미 남편을 통해서 김장 날짜를 들으셨을 텐데도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는 일기예보에 염려가 되셔서 이른 아침 서둘러 올라오셨던 모양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배추가 얼어서 안되는데......"라는 말씀을 남기고 가시는 아저씨 모습에 공연히 염려를 끼쳐드려 죄송했다.

출처 픽사베이

작년 겨울 우리 밭의 배추를 지인에게 김장을 하도록 십 수 포기 뽑아드리면서 미안하셨는지 날씨가 추워질 것을 예상해서 남아있는 많은 배추들을 남편과의 소통도 없이 모두 뽑아 비닐하우스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셨었다.


그 해 겨울에도 방학식이 있는 12월 말 김장 예정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배추를 좀 더 키워서 맛있는 김장을 할 거라며 비료를 뿌려두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아무런 말씀도 없이 배추를 모두 뽑아버렸다며 흥분했던 남편이 정작 아저씨에게는 부드러운 말투로 전화하는 모습이었다.


"배추를 다 뽑아버리셨네?!"하고 말씀드리자 날씨가 추워서 그랬다고 답하시는 것 같았다.

"나한테 전화라도 해주시지. 배추를 좀 더 키워서 김장하려고 비료를 뿌려둔 건데...... "


아저씨는 충분히 생각하고 뽑아 둔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서운하셨던 듯 삐지셨다며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으셨다. 10살 터울의 둘째 형님과 같은 연세여서 그동안 형제처럼 다정하게 잘 지냈었는데....


뒷집 아저씨는 가족과 떨어져 종중 산지기로 혼자 살고 계시면서 우리가 터를 잡고 집을 지을 때 정원 조성을 해주셨다고 했었다. 한 때 모 대학 정원수로 일하셨다는 뒷집 아저씨는 정원 조성에 대해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계셨고 우리집 잔디밭 아래쪽으로 만들어주신 쌍둥이 연못에 대해 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편에게 전해 들으신 듯


"아니, 이 선생님은 예술가이면서 왜 연못의 아름다움을 모르실까?" 하고 농담하시듯 웃으며 말씀하셨었는데 해마다 작은 연못의 아름다운 연꽃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져서 오히려 감사해 했다.


잔디밭에서 밭으로 내려가는 길목 양쪽에 두개의 작은 연못을 보고

"여기에 왜 연못이 필요하지?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했었다.

우리집 쌍둥이 연못

해맑은 소년의 모습으로 성격이 참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남편은 사람이 좋은 건 맞지만 고집이 세신 분이라고 했었다. 순간 서운했을지라도 쉽게 풀어질 줄 알았던 아저씨의 마음이 풀리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당신이 먼저 가서 풀었으면 좋겠어. 함께 가서 식사도 하고...."


여러 번 남편에게 종용했음에도 남편 역시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한 여름 어느 날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이 보였다. 남편이 먼저 가서 당시의 상황을 말씀드리자 이해를 하셨다며 함께 점심을 드시면서 풀었다고 한다.


"여보, 너무 잘 했다.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가는데 밭에서 뒷집 아저씨와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한창 주방일을 하고 있는데 뒷집 아저씨께서 식당 창문을 두드리신다.


"죄송해요. 걱정을 많이 하게 해드렸지요?"라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이시다.

"아니예요. 제가 감사하지요."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집사람이 염려하더라는 말을 남편이 전해드리자 심성 여린 뒷집 아저씨 마음에 걸리신 듯 사과를 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민망했다.

출처 픽사베이

여든을 목전에 두고 계시지만 건강 잘 챙기셔서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이방인처럼 홀로 사시던 아저씨도 우리가 내려와서 너무나 좋다는 말씀을 남편을 통해서 들었었다.

우리 역시 고향이지만 낯선 곳에 자리잡고 살면서 뒷집 아저씨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큰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뒷집 아저씨의 존재이니 부디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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