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탄력성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전적 의미를 찾아 좀 더 확실하게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았다.
"회복 탄력성 (resilience, 回復彈力性)의 사전적 의미는 ‘다시 되돌아오는 경향’ ‘회복력’ ‘탄성’ 등으로 적응 유연성 (適應柔軟性)이라고도 하며, 스트레스나 역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시련을 견뎌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또한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 그 기능 수행을 회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담학 사전)"
방학식을 마치고 와서 서둘러 남편과 함께 비닐하우스에 가식해 둔 배추를 손질해서 절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서두르지 않으면 엄두도 못낼 김장이니 배추 절임에 달인인 남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힘들어도 쉬고 싶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동참했다.
3개월 기간제 교사 종료일이자 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급 피로감이 몰려왔고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한 달 가까이 감기로 몸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내심 쉬었다 김장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안의 배추가 염려되었고 내친 김에 부담을 안고 있는 김장을 해버려야만 편안한 마음으로 쉬면서 몸 관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장을 감행한 셈이다.
남편은 밤새 두어번 나가서 배추가 들어있는 비닐의 위치를 바꾸어주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간을 보니 짠맛에 서둘러 배추를 모두 씻어 건져두었다고 한다. 오후에 김장재료를 준비해서 저녁식사 후 거실에서 남편과 함께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들었던 고춧가루의 양과 인터넷 검색 결과 같은 양이어서 크고 작은 배추 60포기를 50포기로 간주하고 배추 한 포기 당 고춧가루가 200ml라니 10kg을 부으려던 참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1m 긴 주걱을 들고 기다리는 남편이
"양을 봐가면서 넣어야지 왜 생각없이 들이붓는 거야."라는 말에 고춧가루를 8kg 정도에서 멈췄다.
출처 픽사베이
갈고 썰어서 준비한 양념들과 어우러지도록 긴 주걱으로 저어주는데 국물이 없어 저어지지 않자 남편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내려와서 3번째 김장인데 이번과 같이 국물이 모자라는 경우는 나도 처음이어서 당황한 상태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고춧가루와 양념들이 어우러지도록 어떻게 해야 할지 급 고민하기 시작했고 서둘러 멸치와 다시다, 표고버섯 등을 넣어서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 정도면 해결되리라 여겼던 육수를 결국 4번을 끓여서 붓고 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앉아서 계속 화를 내고 있던 남편에게
"화만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나도 처음인데....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 당신은 방에 들어갔다가 내가 부르면 나오세요."해서야 못 이긴 척 방에 들어가 있던 남편을 자신있게 불렀다.
"여보, 이제 된 것 같아. 나와서 저어주세요."
"내년부터는 육수를 아예 끓여놓고 반죽을 해야겠어. 똑같은 방법으로 했는데도 전혀 생각지 않은 변수가 발생하네."
그제서야 남편의 언짢았던 마음이 풀렸고 반죽을 무사히 끝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픽사베이
다음날 아침, 씻어둔 배추가 마르면 안되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서 온다는 동생들 말에 나도 서둘렀다. 남편이야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니 이미 일어나서 양념 반죽상태를 살펴봤을 것이 틀림없다.
스크린 골프에 멤버가 없어서 대신 총무인 자신이 참여하기로 했다며 양념에 배추 속을 버무려서 식사를 하던 남편이 내가 나타나자
"풀죽을 왜 넣지?"
"........"
"풀죽은 양념과 배추가 어우러지도록 넣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풀죽 대신 우리 김장 담글 때마다 쌀누룩을 넣었었잖아. 이 정도면 된 거야."라고 하자 슬그머니 말꼬리를 내린다.
"그래, 알아서 해 봐."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일을 어제 양파도 3개 밖에 안넣었다며 화를 냈던 남편인데 오는 길에 양파를 사오겠다는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반죽이 끝났으니 양파는 사오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하자 대뜸 또 다시 화를 낸다.
"김장하는데 양파를 3개만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잘 참아왔던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 화를 낸다고 해결되느냐느니 여자가 알아서 할 텐데 시시콜콜 간섭을 한다느니......
화를 내고 나간 이후 사흘동안 냉전이 지속되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불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내가 먼저 잘잘못 따지지 않고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하고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고 유쾌하게 지냈을 텐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함께 살아야 하는 남아있는 많은 시간들을 위해서 한 번쯤은 시간을 두고 자신의 언행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었고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의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꾀죄죄 심난해질 뿐 아니라 주름도 며칠 새 푹 패인 것이 마음에 걸리고 아팠다. 나름 힘든 시간이었던 듯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나흘 째 저녁식사를 하면서
"여보, 내가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당신 입장도 이해가 돼."라고 사과를 했다.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의 평안함이 찾아왔고 다시는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쩌면 나를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남편을 보면서 내가 아프지 않도록....
출처 픽사베이
부부가 함께 살다보면 크고 작은 일로 다투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없는 사람처럼 금새 남편에게 사과하고 서로가 불편한 상황을 피해 왔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화해하지 않는 이상 남편이 먼저 나서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