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차이
시니어합창단을 결성하고 나서 남편이 지휘자의 요청대로 선곡위원이 되었다. 지휘자는 지휘만 하겠다며 곡을 선정해서 올려주면 그 곡 가운데 협의해서 결정 후 연습을 하겠다는 지휘자의 말에 따라 남편은 지휘자가 그야말로 지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음악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남다른 남편은 학창시절에는 오르간을 즐겨치고 하모니카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현직에 있을 때는 플룻, 섹소폰, 오카리나 등을 섭렵했다. 오카리나는 교장단 동호인을 만들어서 연주회 때 한태주의 새소리, 자전거를 발표했었고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등 종류별로 오카리나를 소지하고 있다.
퇴직 후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섹소폰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거금을 주고 아코디언을 구입해서 장거리의 전주까지 가서 레슨도 잠시 받았으나 지금은 휴면 중이다.
이렇듯 음악에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남편이 선곡하기 위해서 유튜브를 샅샅이 뒤져가며 촉이 꽂힌 곡들에 대해서는 몇십 번을 들어가며 분석한 후 임원방에 중장기 곡으로 몇 곡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다들 들어보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추천해 달라는 멘트도 덧붙였다.
임원들의 추천 곡을 종합해서 중장기 곡이 결정되고 공지를 올렸는데 지휘자가 장기곡은 합창단들의 수준으로는 부르기 힘든 곡이니 일부 편곡을 해 보겠다는 답변이 올라오자 남편이 답변을 달았다.
[지휘자] 장기적으로 연습할 곡은 반주자와 함께 끝부분만 조금 수정해서 악보를 임원방에 업로드 할게요~~
[남편] 좋아요. 끝부분이 고음이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데 업로드 되니 다행이네요
[남편] 음원 자료도 있으면 업로드가 가능할까요?
[지휘자] 반주자에게 문의해 보겠습니다.
[지휘자] 어려운 음들을 빼고 편집한 거라 같은 악보 음원은 없다고 합니다. 단톡방에 악보 올라오면 반주자가 피아노로 녹음해서 올린다고 합니다~~
[남편] 올려준 바장조 편곡은 원래 제가 의도했던 음색이 전혀 없는 곡이고, 뒷부분만 메조로 하면 될 텐데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쉽네요. 더군다나 음원도 없어서 연습하기도 쉽지 않고요.
[총무] 형님 말씀대로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제 짧은 생각으론 편곡 시 음을 서로 듣고 서로의 간극을 정해야 할 것 같아요. 악보 상으론 음을 상상할 수 없어서요. 그리고 확정된 편곡은 많은 관심과 대화로 풀어나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낮은 자로부터~~~
여기까지는 서로 대화가 오갔으니 아슬아슬한 가운데 분위기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지휘자가 연습을 하라며 각 파트별 반주곡을 올려주자 남편이 급 실망을 하면서 단단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장조의 곡을 바장조로 편곡을 했으면 임원들이 먼저 들어보고 협의 후에 결정을 해야 하는데 사전 협의도 없이 단독으로 추진할 것 같으면 선곡위원이 필요없지 않느냐며 임원방과 합창단방에서 탈퇴해 버렸다는 것을 오후에야 알았다.
"언니, 단톡방에서 왜 나가신 거야?"
"누가?"
"단톡방 확인해 봐. 나가셨던데...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딸 손녀 봐주느라 잠시 수원에 올라가 있는 단원 동생이 남편이 단톡방에서 나갔다며 깜짝 놀라 전화를 했다.
"합창단 초기라 생길 수 있는 갈등이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야."라고 하자 동생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이고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상황이 아니라며 찬양단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크고 작은 갈등들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잘 하셨잖아. 언니가 잘 설득을 해 봐."
설득해서 쉽게 먹힐 사람 같았으면 아예 갈등도 없었다. 남편의 흥분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더 심해졌다.
"내가 화성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음에 대해서 내가 더 민감했으면 민감했지 지휘자보다 떨어지는 사람은 아닌데 사장조의 곡을 어렵다고 바장조로 편곡을 했으면 먼저 나하고라도 협의를 하고 결정을 했어야지. 일언반구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는 것은 나를 무시한 처사야. 나를 선곡위원으로 추천을 했으면 편곡 후에 나하고 상의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이 직접 악보를 편집하고 출력한 악보를 나에게 내보이며 상기된 목소리로 설명을 한다.
"여기 봐. 이 노래의 분위기와 음색 등을 우리 합창단이 어떻게 살려야 할 건지 이렇게 악보에 다 기록을 해놓았잖아. 나는 한 곡을 선곡하기 위해서 50번까지 들은 사람이야. 그런데 어렵다고 미리 포기하고 쉽게 쉽게 나가려고만 한다면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거야. 왜 장기곡인데.. 연습을 하면 가능하다는 거지...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면 내가 굳이 선곡위원일 필요가 없고 애써서 선곡한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내가 없어야 오히려 지휘자에게 나을지도 몰라. 그래서 단톡방에서 탈퇴를 한 거야."
새벽에 탈퇴를 했단다. 많은 고민 끝에 차라리 자신이 빠져주는 것이 지휘자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 끝에 결정한 거라며.. 그런데 문제는 단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남편의 후배인 지휘자의 남편도 지휘자에게 역성을 냈다고 한다.
"일을 왜 이 지경까지 만든 거야?"라며 혼났다고.... 그리고 지휘자가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지휘자가 많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안타까웠다.
단장도 지휘자의 남편도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서 전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아 장문의 문자들을 보내주었다.
남편이 서운해했던 2가지 문제 가운데 1가지는 편곡이었고 나머지 한 가지는 임원들의 추천을 받아 중장기 연습곡을 결정해서 임원방에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의 때 단장이 일방적으로 지휘자가 하고 싶다는 곡을 연습하자는 데서 문제가 된 것이다.
"아이쿠~ 형님이 전화를 안 받으실 만큼 힘들어 하셔서 죄송하네요. 저의 잘못이 크네요. 형님의 열정이 대단하시다보니 일이 뜻대로 안되면 마음도 상하게 됨을 저도 공감합니다. 형님이 하시는 말씀들은 옳고 맞는 말씀이지요. 근데 사람들은 옳은 말과 맞는 말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그 점에서 형님이 힘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형님의 합창단에 대한 열정이 강하시다 보니 단원들의 수준이나 생각보다 앞서가시는 부분들이 있어 서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형님의 노력과 수고가 오히려 부담으로 되돌아오게 될 수 있겠지요. 그런 부분들을 저도 읽을수 있어서 '형님이 힘드시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편곡 부분은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해 사실 저는 잘 모르고 '그렇게까지 편곡해서 해야 하나?' 이 정도 생각했었지요. 그 부분에서 처음이다 보니 ... 각자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어려움이 생겼고 형님이 처음 가지셨던 감동적인 곡이 변형된 모습으로 되돌아 왔을 때 형님이 속상하셨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연습 때 공지에 올리신 곡과 다른 곡을 연습한 배경은 그렇습니다. 지휘자께서 합창단 수준이 악보를 못보는 사람이 많고 초보들이라서 어려움이 있다 하셔서.... 그렇다면 제가 쉬운 곡을 먼저 하고 다음에 수준이 있는 곡을 연습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강추해서 그렇게 된겁니다. 형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다면 제가 먼저 형님께 양해를 구했을 텐데 그렇지를 못했네요. 곡 연습이 그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저의 생각과 좁은 소견이니 형님께서 이해해 주세요.
합창단이 창단된 지 두어 달 밖에 안되었는데 그래도 이 수준까지 온 것은 형님의 열성과 관심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형님이 관심을 안 가져주시면 무사안일하게 될 겁니다. 형님의 순수한 열정이었기에 더 마음이 힘드셨겠지요. 저도 힘드셨을 형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네요. 동생들의 미숙함과 실수에 대해 양해해 주시고 다시 힘내 주세요."
"모두가 수고해 주심에 감사하고 격려해 주어도 힘들고 어려울 텐데 일련의 일들이 이해할 수 없고 나름대로는 도움을 주려고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덕이 되지 못해 앞으로는 활동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합창단 활동을 해서 행복했습니다."
"형님! 형님의 탁월함이 Yes 와 No가 분명한 것이지요. 저는 그런 부분이 순수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부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상해도 뒷끝이 없을 수 있었겠지요. 형님과 함께 하지 않는 합창단 활동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생각할 수도 없네요. 일단의 일들은 소양의 부족함으로 여겨주시고 모두 후배이고 동생들이니 심한 질책해 주시고 함께 해주세요. 형님을 의지하고 합창단을 함께 하고 있는데 형님~ 힘내시고 도와주세요."
결정된 곡이 아닌 다른 곡을 연습한 것에 대해서는 단장이 실수한 일이라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에 남편의 마음이 풀어졌다. 그런데 편곡 문제로 꽉 닫혀버린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아 단장님 내외가 급기야 우리집을 찾아왔다.
두어 시간의 진지한 대화 끝에 결국 남편은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고 즉석에서 단장이 임원방과 합창단방에 재 초대를 했다. 남편이 단톡방에서 나간 이유를 모르고 궁금해했던 분들이 많았을 테지만 이러한 갈등들이 초석이 되어서 더욱 멋진 합창단이 될 것임을 믿는다.
추진하는 임원들이 모두 합창단 운영은 처음이고 서로의 입장에 차이가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저지른 실수로 인해 발생되는 크고 작은 갈등들을 서로 원망하거나 탓하기보다 충분한 소통과 지혜로 해결해 나가며 남은 생 서로 사랑하며 힘이 되어주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