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어요

매화꽃

by 이옥임

우리집 현관 앞의 매화가 매년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운다. 남편은 양지 바른 곳이라서 다른 곳의 매화들보다 꽃이 일찍 피는 거라고 했다. 우리집을 오르는 언덕 길가 옆 매실농장의 많은 매실나무들은 아직도 봉오리만 맺혀 있다.


둑길 운동을 나가는 길에 보니 '봄의 전령사'라는 노오란 산수유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모악산의 도립미술관 뒤 양지바른 언덕의 벗나무에도 꽃이 핀 걸 보면서 이제 곧 서로 앞다투어 봄꽃들이 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꽃들이 피게 되면 노랑, 빨강, 핑크, 하얀 색들로 예제 수를 놓을 풍경들이 떠올라서 가슴 설렌다.


특히 해마다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는 고덕산, 경각산, 모악산 자락에 하얀 벗꽃들이 장관을 이룬다. 새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집들이로 우리집에 모셨던 전주의 어르신 한 분이 해마다 봄만 되면 느린 어조로 또박또박 잊지 않고 묻는 말씀이 있다.


"산의 벗꽃들이 매우 아름답지요?"


거실에 앉아서 철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감사한데 경각산을 잇는 치마산에서의 페러글라이딩도 장관을 이룬다. 봄이 되자 많은 분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곳에서 다양한 색깔로 둥둥 하늘을 날고 있다. 그동안 하늘을 날고 싶어서 기인 겨울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현직 시 오랜 기간 테니스를 즐겨 쳤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장비를 챙겨들고 서둘러 나왔을 거라는 것을... 추위와 상관없이 비교적 바람이 잠잠한 날엔 하늘을 나는 모습들을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그 분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중독 수준으로 이해했다. 찐 페러글라이더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추워서 정신이 없었던 추위도 결국 그렇게 지나가고 이미 따뜻한 봄이 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꽃샘추위다. 봄이면 기승을 부리는 꽃샘추위가 거센 바람으로 체감 온도를 뚝 떨어뜨린다.


전주에 나가면 언니들이

"아이구, 우리 옥님이는 아직도 겨울이네!"

"구이는 아직도 겨울이지..."

"옥님이가 사는 곳은 전주보다 온도가 훨씬 낮아."하고 웃으며 내 옷차림을 보고 한마디씩 한다. 나는 내의와 발목 부츠를 벗지 못하고 있는데 전주 언니들의 옷차림은 밝고 환한 봄 옷차림이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다 나온 듯한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년에 비해서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으나 날씨는 유난히 춥다고 생각했었다. 내려와 살면서 추워서 정신 못 차리는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은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춥다고 허둥지둥 정신없어 했던 경험은 처음이다.


봄이 오니 남편이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고 풀을 뽑는 모습을 보고 혼자 웃다가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ㅎ 여보, 당신이 유일하게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는 봄이 왔네."하자 알아듣고 소리내어 웃는다. 쪼그리(농사용의자)에 앉아 풀을 뽑다보면 주변의 풀을 보고 급한 마음에 앉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풀을 뽑게 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남편의 모습이다.


올에 고등학생이 된 우리의 첫사랑 손녀 유아 시절, 남편이 손녀 앞에서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를 변화시키는 힘이 손주였던 것처럼 잔디의 풀이 남편을 바꾸어 놓았다. 코코가 있었다면 풀을 뽑다가 잔디밭에 누워서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누워서 진돌이를 불렀더니 미동도 하지 않던데......"

유난히 남편을 따르고 살가웠던 코코와 같지 않은 진돌이가 남편은 아쉬운 모양이다.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코코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이쁨 받는 것도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