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돌이
어제 오후, 한 달 넘게 요양보호사 교육을 재미있게 받고 있는 남편이 수업 후 동네 어귀라며 운동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전화가 왔었다. 해가 길어지고 날씨가 풀리면서 동네 둑길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루종일 앉아서 교육을 받다보니 소화가 되지 않아 늘 더부룩한 상태여서 속이 답답하다니 이해가 갔다.
집에 도착한 남편이 진돌이부터 챙겼다. 진돌이에게 하네스(가슴줄)를 입혀서 집을 나서는데 앞장서서 엉덩이를 실룩샐룩 흔들며 달려가는 진돌이가 매우 신이 났다. 그러고보니 진돌이가 우리집에 온 것이 작년 이맘 때였으니 함께 한 지 그새 1년이 되었다.
진돌이 털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우리집에 보내고 싶어했던 지인과는 다르게 진돌이의 주인이었던 지인의 딸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진돌이가 안쓰럽다며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보내자는 말을 했었다. 결국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에 진돌이가 와서 1년 동안 무탈하게 잘 지낸 셈이다.
앞서가는 진돌이를 보니 살이 많이 빠져서 넓적했던 등판과 배, 엉덩이가 홀쭉해졌다. 그리고 몸놀림도 가볍고 매우 빨라졌다. 잘 뛰는 것으로 보아서 염려했던 성인병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을 하겠다고 진돌이를 동행시킨 것이 결국 진돌이의 속도에 맞추게 되었고 번갈아 줄을 잡고 진돌이를 따라간 우리 부부는 무리를 했다. 쇼파에 누워있던 남편이 발가락에 쥐가 난다며 급하게 일어나 발가락을 맛사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도 나이가 들었을 뿐 아니라 무리를 했구나 생각했다.
줄을 통해 진돌이의 속도를 조절한다고 했음에도 진돌이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평소 걷던 보폭과 속도가 달리기로 가속화되어 금세 숨이 찼다. 누가 보면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잘도 뛴다고 했을 거 같다. 처음으로 왕복 1시간 가까이 둑길 운동을 신나게 하고 돌아온 진돌이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엎드려 꼼짝 안 하는 모습을 보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도 퇴근 후 이미 운동 갈 차림을 해놓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요양보호사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남편이 전화를 했다.
"운동 가야지?"
집에 도착한 남편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돌이를 데리고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레 겁이 났다. 어제처럼 진돌이의 속도에 맞추어서 운동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돌이를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어서 오늘은 진돌이의 속도를 훈련시키자고 했다.
진돌이가 신나게 출발했지만 속도가 어제와는 사뭇 다른 것을 보고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진돌이와 함께 했다. 도로에서는 줄을 잡고 가다가 둑길엔 사람이 거의 없어 자유롭게 가도록 풀어주었다.
그런데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진돌이가 마주오는 세 사람이 보이자 말릴 새도 없이 달려가 가운데 남자분에게 몸을 내맡긴다. 양쪽의 여자분들은 놀라며 몸을 움츠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잠시 후 길가의 밭에서 비닐을 씌우고 계시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진돌이가 격하게 밭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나는 내심 노인이 놀라서 쓰러지거나 진돌이가 물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노인 분에게
"괜찮아요. 물지 않아요!"하고 큰소리로 말씀드리자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못 알아들었다. 진돌이는 남편이 급히 뒤쫒아가서 큰소리로 부르자 되돌아왔다.
"아저씨가 염려하는 것은 씌워놓은 비닐이 찢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거야."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밭에서 나온 노인 분에게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죄송합니다. 애쓰게 씌워놓은 비닐을 찢어지게 해서.. 조심할게요."
찢어진 곳이 많으면 남편이 집에 있는 비닐로 씌워드리게 해야겠다 생각하며 진돌이 목줄을 잡고 목적지까지 가서 되돌아오는데 노인분이 일을 마친 후 경운기를 타고 마주오셨다. 다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강아지 데리고 운동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데 씌워놓은 비닐이 찢어지니까 하는 말이었어."라며 웃는 모습으로 지나가셨다. 돌아오는 길에 노인의 밭을 남편이 확인해보니 두 군데가 찢어졌는데 찢어진 곳을 흙으로 덮으면 문제없다고 해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돌이가 노인 분을 물기 위해 달려간 것이 아니라 반기기 위해서 달려간 거였고 물기 위해 달려갔다면 속도가 달랐을 거라고 한다.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진돌이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격하게 반응하며 몸을 내 맡겨서 택배 기사님들도 오시는 분들마다 쓰다듬으며 예뻐해 주신다.
진돌이를 모르는 사람은 진돌이의 덩치를 보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자동반응인 걸 어쩌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돌이가 너무나 온순해서 오히려 안쓰럽다면 이해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