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의 매실나무에 예년 같으면 풍성하게 피었어야 할 매화가 올에는 열 손가락만큼만 피었다가 져버렸다. 조경수로 심어주신 뒷집 아저씨와 남편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매실나무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키다리 아저씨가 그리워졌다.
50년 전 국민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키다리 아저씨의 정원'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은 담을 쌓아두었다가 어느 봄날 자신의 정원에만 눈이 쌓인 겨울임을 발견하고 담을 헐어 아이들이 들어와 놀도록 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키다리 아저씨의 정원'은 육순이 넘었는데도 잊혀지지 않고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는데 현관 문 앞의 매실나무를 볼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났다. 동네 아이들을 죄다 불러모아 매실나무 주변에 빙 둘러 앉혀놓고 키다리 아저씨는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현관을 지나칠 때마다 매실나무에 걸터 앉은 맘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났었는데 이 매실나무가 죽었다니 나로서는 몹시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은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 때문일 거라며 매실나무를 캐내고 큰 화분에 화초를 심어서 놓아두는 일 밖에 없다는 말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좋을까 생각했다가 잠시 잊고 지냈다.
옆 매실농장의 매화들과 함께 피었던 많은 꽃들이 지고 그 자리에 새싹들이 돋아날 즈음 현관 문 앞의 매실나무를 보니 새파란 싹들이 제법 올라와 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여보, 매화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네!"하고 말하자 남편도
"그러게. 살았더라고. 캐내려고 했는데 두고 봐야겠구만."
얼마나 기특하고 용한지 부디 잘 살아서 내 마음 속의 동화가 계속 살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주변에 매실나무가 많이 있다 하더라도 현관 문 앞의 이 매실나무 한 그루가 나에게는 스토리가 있는 매우 특별한 나무가 아닌가. 그렇다면 막연하게 이 매실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주기만을 바랄게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매실나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