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옥임 May 03. 2022

복숭아와 거봉

예기치 않은 자가격리로 후배들에게 민폐를 끼쳐서 어제 오후에 마트에 들러 사다 둔 복숭아와 거봉을 가지고 이른 시간에 출근을 했다. 후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복숭아와 거봉을 씻어서 먹을 수 있도록 잘라두고 교장실과 행정실 몫으로도 접시에 담아 두었다.


드디어 후배들이 하나 둘 교무실로 들어오면서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하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여러 선생님들께 본의아니게 민폐를 끼쳤어요. 고생들 많았지요?"하고 말하자 오히려

"선생님이 고생하셨지요.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많이 답답하셨겠어요."라며 웃는다.


"와, 이 과일은 선생님께서 준비하셨어요?"

"복숭아 색감이 너무 예쁘다. 맛있겠는데요."

복숭아의 때깔이 너무나 예쁘고 마트 점원의 장담대로라면 맛이 있어야 할 복숭아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실망하고 말았다. 장마철 당도가 떨어지는 무미의 복숭아 맛이다.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있다는 말이 순 거짓말이 되는 순간이었다. 

"맛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맛이 전혀 아니네."라고 하자 

"복숭아 맛이 그렇지요. 이 정도면 괜찮은 거예요."하고 옆에서 친목회장이 거든다.


 거봉은 씻을 때 이미 실망을 했었다. 봉지를 벗기는데 우수수 거봉 알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태가 가장 좋아보인다는 것으로 골라 준 건데 봉지 안의 모습과 봉지를 벗겼을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애쓴 후배들에게 신선하고 맛있는 것으로 먹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농가 탓도 점주 탓도 아니라는 것을 내려와 살면서 절감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훨씬 길어진 장마와 많은 강수량으로 과일의 당도가 떨어지고 가격은 턱없이 올라버린 상황에서 맛있게 먹는다는 기대는 아예 포기하고 접근해야 했었다.


생사를 가르는 코로나 비상 시국에 복숭아가 맛이 좀 떨어진다고 해서 문제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중요한 것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과일을 재배하느라 고생하는 농가와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고 애쓰는 점주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농산물 판로에 장애가 되고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생활고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호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