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옥임 May 03. 2022

단호박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는데 우리 집 뒷뜰에 벌통을 갖다두고 벌을 키우는 지인이

"아니, 단호박이 있고만 왜들 안 따고 벌레들에게 다 먹여요?"라며 3통을 따서 들고 온다. 그래서 갖다 드시라고 하자 집에도 있다며 외부 싱크대에 놓고 간 것 가운데 성한 것은 나중에 먹고 벌레들이 파 먹은 것만 남편에게 주방 창문 안으로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작은 호박부터 손질을 하는데 구멍이 송송 뚫린 곳에서 집게벌레처럼 생긴 검고 작은 벌레가 톡 튀어나온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칼 손잡이를 이용해서 잽싸게 죽인 후 호박을 손질해서 냄비 안의 삼발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남은 큰 호박을 자르려고 칼을 대는 순간 깊이 파인 구멍들에서 2마리의 벌레가 톡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지른 소리에 벌레도 놀랐는지 구멍 안으로 다시 쏙 들어가버린다. 밖에 있는 남편에게 서둘러 단호박을 건네주자 남편이 밖에서 내 소리를 들었던 듯 웃으며 받는다. 

"당신이 손질해서 넣어주세요."


지인이 따다 준 단호박을 갖다 먹으라고 했지만 농사에 달인인 부부가 단호박을 심지 않았을리 없고 예쁘게 키워서 이미 수확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인과 함께 같은 종자의 고구마순을 구입해서 심었음에도 토질 차이인지 우리집 고구마와는 전혀 다른 당도가 높고 모양이 예쁜 고구마를 수확하는 지혜로운 지인 부부를 보면서 나는 마냥 신기해 했었다. 


지인에게 고구마를 구입해서 먹는 다른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다 먹는 동안 썩혀서 버리는 고구마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고구마는 맛과 모양은 그만 두고라도 수확한 고구마의 2/3는 썩어서 버려야만 했었다. 올 고구마는 수확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양들을 멧돼지들에게 빼앗긴 상태여서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호박을 좋아하고 많이 먹는 편이어서 작년에는 마트에서 단호박을 구입 맛있게 먹고 호박씨를 받아서 심었는데 단호박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제부터인가 씨를 받아서 심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올 봄에는 당도가 높고 품종이 좋은 단호박씨를 구입해서 심었었다. 당연히 단호박이 많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남편은 길어진 장마와 많은 강수량으로 몇 개 안 나왔다며 더 이상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단호박이 지인의 눈에 발견이 된 것이다. 벌레에 먹힌 부분들을 제거하고 쪄내니 당도가 매우 높다. 벌레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확 달아나지만 단호박의 당도에 빠져서 맛있게 잘 먹었다.


농촌에서 살게 되면서 농작물을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후 관리, 수확한 뒤의 관리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리도 언제쯤이나 지혜로운 지인 부부의 농사법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이 곳으로 내려온지 만 3년이나 되었지만 농사에 한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모기와 김장배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