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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May 03. 2022

모기와 김장배추

어제 오후에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서가 지났으니 김장배추를 심어야 해. 무도 심고......" 라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전해주기 위해 집에 왔는데 남편이 먼저 알고 사다 둔 배추모종이 눈에 띄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저장고 옆 다목적 공간에서 남편이 급하게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방 쪽으로 다가가서 내다보니 모기에게 물렸다며 예제 많은 곳이 물려서 벌겋고 커다랗게 부풀어 있는 게 아닌가.

이유인 즉슨 어제 사다 둔 배추모종을 심다가 모기에게 물렸단다. 200포기를 심는 동안 모기와 씨름을 한 셈이다. 엉덩이 전체가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어떻게 참고 200포기를 심었는지 안쓰러웠다. 그러고도 약을 바르면 괜찮다니 대단하다.


남편과 내 살성이 다른 점은 모기에게 물린 부분에 약을 바르면 남편은 쉽게 가라앉는데 반해 나는 약을 발라도 상처가 오래 간다. 입구의 풀 정리를 하다가 산모기에 물렸었는데 약을 계속 발랐음에도 덧이 나서

"언니, 화상 입었어?"하고 지인이 놀라 물을 정도로 상처가 심해졌다.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작은 물집들이 군집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들 했지만 병원 치료를 하지 않아서인지 그 상처의 흔적이 오랫동안 남아서 보기에 흉했다. 그것도 목 한 가운데에...

모기에 물린 몇 번의 경험 뒤로는 일체 밭이나 정원 손질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나갔다 하면 여지없이 물려서 물린 상처가 덧나고 한동안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장배추의 모종이 100포기도 아니고 200포기라는 말에 처음에는 깜짝 놀라

"여보, 100포기도 많은데 웬 200포기야?"라고 했지만 예년의 경우를 보면 200포기를 심었다 해도 포기다운 포기가 몇 포기가 될 지 모르고 또 몇 포기가 살아남을지 모르는 일이다. 작년에도 50포기가 넘는 배추모종을 심었다고 했었는데 결국 10포기도 안되는 그것도 속이 차지 않은 작은 배추들을 뽑아서 12월 31일에 김장을 했었다.


이어지는 출근과 감기 몸살로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성치않은 몸으로 김장을 했다. 가급적 안하려고 했다가 삼둥이들이 필리핀에서 들어오면 맛있는 김치를 담아주기 위해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고 배추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급하게 담았던 김장인데 고맙게도 남편을 비롯해서 가족들과 지인들이 맛있다며 잘 먹어주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신 딸의 시아버님도

"이 김치 어디서 난 거냐?"라고 물으시기에

"엄마가 주셨어요."하고 말씀드리자 김치가 맛있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듣고 올 겨울 김장은 더 맛있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맛있게 담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데 염려가 된다. 맛있는 김장이 될 줄 알았더라면 정확한 레시피를 기록해서 남겨두었어야 했는데 주먹구구 아무 생각없이 담근 김장이다.


이 곳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집안일은 겁부터 내고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면 이 곳에서는 과감해졌다. 겁도 많이 없어지고 일부터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다. 안 되는 것은 될 때까지 해야 하고 못 하는 것은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명퇴하고 내려와서 본격적으로 살림을 시작하면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그 동안 헛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상실감과 자괴감이 들어서 한동안 힘들어 했었다. 더 이상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느끼는 문제점들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나름 노력한 결과 그동안 힘들고 어려워했던 일들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태도로 바뀌었다.


올 김장은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맛있게 담는 날까지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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