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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May 04. 2022

안 낳았으면 어쩔뻔 했나 몰라

"안 낳았으면 어쩔뻔 했나 몰라."할 정도로 너무나 예쁘다는 막내둥이 지원이.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지원이는 할미인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예쁜 아이다. 친할아버지도 지원이의 와일드하고 화통하며 뻥 뚫려있는 생각이나 거침없는 언행을 보면

"지원이가 크게 될 것 같다."라고 하셨단다.


5살 유아라고 하기에는 재치도 넘치고 사용하는 어휘력과 표현력도 매우 풍부하다. 다양한 표정과 언행의 표현도 얼마나 적극적이고 리얼한지

"엄마, 지원이 연기시켜 볼까?"하고 묻는 딸에게 나도 흔쾌히

"그래,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시켜보는 것도 좋지.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했다.


만삭으로 힘들어했던 딸이 미얀마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들어왔었다. 6개월여 동안 함께 살면서 지원이를 출산했지만 한국에서 자리잡을 새도 없이 사위가 필리핀으로 발령을 받아 다시 나가야 했다. 나갈 때는 지원이가 갓난아기였지만 5살이 되어서 들어왔으니 우리 부부가 필리핀에 들어가서 지원이를 보고 온 것 말고는 유아시절을 가까이서 보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도 외할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필리핀에서 입국한 첫날부터 엄마 없이는 못 잔다던 아이가 외할머니와 잔다며 안방 침대의 반을 떡하니 차지하고 누워있다.

"할아버지는 쇼파에서 주무세요."해놓고 마음에 걸렸는지 거실에 나가서

"할아버지, 들어와서 주무세요."하고 권하는데도 할아버지는  쇼파에서 주무시겠다고 했단다.

실망해서 들어온 지원이를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안쪽으로 눕히고 내가 가장자리에 눕자

"할머니, 여기가 다 내 자리예요?"하고 팔을 뻗어서 묻는다.

"응. 지원이 자리야."하자

"왜 이렇게 넓어요? 나 욕심장이 아닌데.... ."라는 말에 지원이와 함께 소리내어 웃었다.


식사 때 밥을 잘 안 먹거나 늦으면 가차없이 상을 치우며

"지원이 아침 밥 없어. 그리고 오늘 아이스크림 못 먹어."하고 말하는 제 엄마에게

"잘못했어요. 밥 먹을게요."하지만 완강한 엄마의 태도에 이내 아이스크림까지 포기한다. 언니 오빠가 아이스크림을 꺼내드는 모습에

"지원아, 우리 지원이는 어떻게 해?"하고 할미가 물으면

"내일 먹으면 돼요."라며 언니와 오빠에게 다가가서 한 입만 달라고 조르거나 떼를 쓰는 모습이 전혀 없다. 지원이의 모습이 마냥 대견하기만 한데 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내려오기만 하면 지원이가 버릇 없는 모습을 보인다고 염려한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지혜롭게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 모습이 생각났다. 외할머니에게서 컸다가 다섯살이 되어서 올라온 아들이 좀처럼 밥을 먹지 않아 마음 아프고 애를 태웠웠다. 어떻게든 한 수저라도 먹여보려고 용을 썼던 나와는 달리 밥을 먹지 않으면 먹이지 말라는 남편과 함께 한 번씩 다투곤 했었다.

 

하루종일 먹지 않고도 배고프다는 말이 없고 자청해서 밥을 달라는 일이 없었던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결국 아들은 군대가기 전까지 180의 키에 56키로 내외의 삐쩍 마른 모습으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군대에 다녀와서 정상 체중이 되었고 지금은 연구실에서 앉아만 있으니 살이 찐다며 걱정하는 아들이 되었다.


내가 잘못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막내둥이 지원이는 어쩌다 야단을 맞기라도 하면

"엄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하고 사정하지만 제 엄마의 결정은 단호하기만 하다. 여러 말 할 필요도 없이

"방에 들어가 있어!"하고 말하면 막내둥이 지원이는 꼼짝없이 방에 들어가 있다가 저 혼자 풀어져서 슬며시 나오는 모습이 마냥 해맑다. 아무래도 방에 들어가면 우리 막내 지원이의 마음을 풀어주는 신비의 묘약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지난번까지만 해도 막내둥이 지원이가 제 오빠와 환상의 짝꿍이 되어서 허스키한 목소리와 절도있는 행동으로 한 손을 높이 들어보이며

"아이고, 이사장!"하고 부르더니 한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이거 정말 반갑구먼. 반가워요. 반갑구먼. 반갑습니다."하고는 마지막에 오른쪽 발을 살짝  뒤로 들어보이는 익살스런 모습으로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새 컸다고 부끄러워서 절대로 안 하겠단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남매의 코믹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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