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유리조각 대신, 부드러운 깃털의 간질임을 돌려 주는 장소
7월의 끝자락, 축축 늘어지는 날씨다. 장마가 아쉬울 만큼 빨리 지나갔다. 비를 좋아하고, 비가 오는 시원함과 청량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장마가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아무리 더워도 비가 오는 시간에는 시원하니 여름 산책에 비는 고마운 존재다.
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된 첫 날이다. 장마에 불편한 것이 있었다면, 아파트의 앞 베란다에 물이 새어 들어왔던 것이다. 그럭저럭 닦아내며 방수공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우리 집 때문에 아랫집부엌 천장에 물이 샌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방수공사를 알아봤다. 그리고 긴 장마의 끝, 오늘은 밖에서는 방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날이 너무 더워서 공사하는 분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공사하는 날만 벌써 세 번째 잡았다. 처음 잡은 날에는 갑자기 비가 왔다(마치 스콜같았다). 비가 오는 날은 방수공사를 진행할 수 없단다. 결국 여기까지 출장오신 기사님은 그대로 돌아가고, 두 번째 잡은 날은 새벽부터 비가 오니 취소, 드디어 오늘 공사를 하고 있다. 역시 장마기간에는 비를 피해 날을 잡아도 갑자기 오는 비를 어찌할 수 없었다. 오늘은 장마의 끝은 끝인가 보다.
습하고 더운 날씨.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다. 봄가을이야 괜찮고, 겨울은 추워도 껴입으면 된다지만, 더운 날은 외출이 어렵다. 바닷가로 피서를 간 기간을 제외하고는, 여름은 더위로 산책도 발목 잡히고, 집에 있어도 뭔가 능률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얕은 졸음이 슬슬 온다. 차가운 물을 마시며 잠을 깨고 책을 보거나 뭔가를 하다가도 축축 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일 모레면 아이들도 방학이다. 휴직자 주부에게는 아이들 방학은 복직과는 다른 새로운 일터다. 아이들 세 끼 식사를 차려주고, 때때로 문화체험을 시켜줘야 할 의무가 달려 나온다.
오늘은 더워지기 전에, 오전에 산책을 나갔다. 그래봐야 거의 30도 가까이 올라갔지만, 오후에는 33도, 폭염주의보까지 뜨니 어디를 나가기도 무섭다. 오늘의 산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가기 전에 책을 정리하려다 책꽂이의 절반을 비워냈다. 내일 모레 재활용을 버리는 날까지 며칠은 쌓아놓은 책과 동거해야하지만, 어쨌든 정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책꽂이를 쓸어 내려가며 절반 가까이 비우고, 자리 못 잡고 있던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책장에 꽂혀있던 이런 저런 서류봉투까지 비우고 정리하고 보니 덥다.
공연히 그새 길어버린 머리가 신경 쓰인다. 내친김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싹둑 잘랐다. 늘 가는 단골집인데, 지금 내 파마머리가 딱 예쁜 C컬로 자리 잡았는데, 정말 자를 거냐고 묻는다. 잠깐 고민하다가 처음 생각대로 머리를 잘랐다. 어차피 여름에는 더워서 머리를 몽땅 묶고 다니니 예쁜 C컬도 소용이 없다. 더위를 안 먹는 거, 땀띠가 안 나는 게 더 중하니... 머리를 자르고 보니 반갑다. 원래 내 머리로 돌아온 느낌.
마음속에 자잘한 유리조각이 콕콕 찔러댈 때에도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보드라운 깃털 같은 것이 마음을 간질인다
이러저러한 정리를 다 마치고 드디어 산책을 했다. 아직 오전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더웠다. 30도의 기온과 다르게 정수리까지 내리 쬐는 뜨거운 햇볕 덕에 체감온도는 훨씬 그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벼운 등산이 내게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산만한 마음일 때는 산에 오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산은 가만히 다독거려준다. 산을 정복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산을 어떻게 정복하나?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산의 작은 부분에 깃들어서 조금 올라가면서 산이 주는 평화를 누린다. 아무리 복잡한 마음이어도 산은 마음을 위로한다. 헉헉 대며 올랐다가 다시 돌아 내려올 때의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한지. 마음속에 자잘한 유리조각이 콕콕 찔러댈 때에도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보드라운 깃털 같은 것이 마음을 간질인다.
오늘의 산책. 더웠다. 여러 일정을 마치고 산만하게 산에 올랐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도, 산은 동일한 선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