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게 길을 묻는다

길을 알려주는 감정

by 소미소리

감정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나의 경우는 ‘아니올시다.’ 내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 매일 세 페이지의 모닝페이퍼를 쓰곤 한다. 그 정도로 노력을 해야 내 감정의 밑바닥에서 내는 가느다란 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니, 모닝페이퍼를 쓰는 시간이 아깝기는커녕 달콤하기만 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도 좋아하니,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정도가 거의 햄 반찬만 찾는 아이 수준이다. 어릴 때에도 반찬 편식이 심했다. 물컹한 가지나물이나, 고기에 붙어있는 미끄덩한 기름은 입에 대지 못했고, 심지어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상에 오른 장조림에 허옇게 붙어 있는 기름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밥맛이 뚝 떨어졌다.


책을 좋아하니 어지간한 책은 잡히는 대로 읽는 편이지만 스토리가 있는 소설을 읽을 때에는 참 좋다. 너무 재미있어서 씹어 대듯이 천천히 읽기도 하고, 몰입이 심하게 되어서 금세 책 한권을 뚝딱 읽기도 한다. 시간도 아깝지 않다. 다른 것을 하다가도 틈틈이 읽던 소설을 집어 드니, 소설을 읽을 때의 나만큼 시간을 밀도 있게 쓰는 이도 드물 것이다. 소설 속 남의 감정에는 몰입을 하고 입체적으로 느끼는데, 내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어쩐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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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잃곤 하는데, 그건 내가 길치라는 뜻도 되지만, 마음의 길을 잃을 때에는 나의 감정의 소리에 민감하지 못하고 매우 둔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머리로는 판단을 내리고 내가 가야할 길의 장단점을 다 분석하고도 남지만, 진심으로 헌신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돌진하기 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찾을 때가 많다. 인생의 중대한 시점에서도 머뭇거린다. 이 직장이 맞나? 이렇게 지겹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데, 이 직장에 그래도 머물러야 하나? 이 직장을 떠나서 내 마음의 소리를 길잡이 삼아, 매일매일 빼곡히 읽고 쓰고 여행 다니고 산책을 하고 하늘을 보고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내 집을 호텔처럼 아늑하게 꾸며놓고 살면 좋지 않을까? 하다가도,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것 만한 재테크가 어디 있나? 안정적인 조직의 일원이어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 아닌가?하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만다. 그러면 작가로 살고 싶다고 외쳐대던 마음이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댄다. ‘작가가 뭐 그리 쉽게 되나? 작가로 벌어먹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려면 책부터 내고서, 강연이라도 다니면서 생각할 일이 아닌가?’ 하면서 한 발 물러선다. 오랜 시간을 이렇게 내 감정의 소리와 그에 반대하는 두 가지의 목소리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다.’ 가난을 견뎌야 한다면 오히려 내가 나가서 돈을 버는 방법을 선택할 테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어야 직장을 떡하니 그만둘 수 있을 테다. 그런데 돈을 벌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게 참 막연하다. 친구들 중에 직장을 그만둔 이들이 있다. 나보다 잘 살아서도 아니고, 나보다 더 많이 쌓아두어서도 아니고, 그저 그들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결정했기에 가능했다. 그 친구들은 직장을 그만 둔 것을 후회한다. 나름 잘나가는 회사에 재직할 때에 더럽고 치사했어도 그 순간을 견디기만 했다면 어쨌든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대접을 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더럽고 치사한 순간, 아니 그렇게 극단적으로까지는 아니어도 무료하고 갑갑한 시간이 이어져서 인생의 시간의 대부분을 채운다면 그만한 낭비가 어디 있을까?


최성애 박사의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을 읽고 있다. 자신의 감정에 민감한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그래야 아이는 부모로부터 공감 받고 수용 받는다고 느껴서 더 잘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부모인 내가 나의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방법, 아이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도 제시되어 있다. 아이를 훈육하겠다고 행동 교정을 할 때에는 아이의 감정에 대한 온전한 수용이 선행되어야 하고, 행동에 대한 한계점의 설정은 그 뒤에 할 일이라고 한다. 감정코칭만이 아이를 기르는 온전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나와 아이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자신의 감정의 소리에 민감한 아이로 키우는 것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아이가 길을 찾을 때 길잡이 역할과 추동의 힘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내 감정의 소리보다 해야 할 것, 나의 어깨 위에 놓인 책무를 우선시하며 살아온 나,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해야만 해!’보다는 ‘원하는 것이다!’라고 외친다고 세상이 완전히 뒤집히지는 않는다고, 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진실은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에게 가만히 이야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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