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에서 동물성 식품을 모두 없애려는 노력은 하되,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맛 좋은 채소 스프에 닭고기가 들어 있다거나, 통밀 가루 빵에 계란이 들어갔다고 해도 괘념치 마라. 이런 정도의 양은 영양학적으로 별로 중요치 않다.(p.319) 콜린 캠벨, <무엇을 먹을 것인가>
자연식물식(채소, 과일, 통곡물 위주의 가공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을 하고 있지만, 유연하게 실행하고 있다. 처음 30일은 아주 강하게 자연식물식을 고수했고, 이후부터는 치팅데이도 갖고 일상에서도 조금씩 섞여 들어간 동물성 식품은 먹고 있다. 그러던 차에 콜린 캠벨의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매우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물론 콜린 캠벨도 자연식물식을 할 때에는 완전 채식을 할 것을 요구하지만, 때로 섞여 들어간 동물성 식품에까지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식이요법은 더 나은 건강과 아름다움, 더 좋은 삶의 질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식이요법하느라 불행해진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그리하여 오늘은 가족들 음식으로 수육을 삶았다가 몇 점 맛있게 먹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공휴일의 가족들 반찬은 수육이고, 나의 자연식물식 반찬은 따로 된장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고, 된장국이 수육보다 맛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줄곧 그래왔다. 가족들의 고기반찬을 하고, 나의 채소 반찬을 만들면, 채소 반찬이 훨씬 맛있기 때문에 고기반찬에는 손도 안 갈뿐더러, 간 보느라 집어 먹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그런데, 오늘 삶은 돼지고기 수육은 식감도 좋고 고기 누린내도 전혀 없어서, 맛만 보려다가 여러 점을 먹었다. 넉넉한 크기의 냄비에 (냉동) 양배추 심지를 잔뜩 깔고 냉동실에 있던 돼지고기 두 근을 넣어 끓였다. 된장도 한 큰 술 넣어서 푹 삶았다. 냉동실에 있던 돼지고기를 해동할 시간 없이 바로 삶는 바람에 한 시간 반 정도 삶았다. 양배추는 먹을 때마다 심지만 따로 냉동실에 넣어 두고, 채수가 필요할 때 사용하거나 수육을 할 때 잔뜩 넣으면 고기 맛이 좋아진다. 한 시간 반을 삶았더니 물이 다 졸아들고 고기 한 면이 노릇하게 되었다. 고기의 가장 두터운 부분을 젓가락으로 찔러보니, 핏물대신 뽀얀 육즙과 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잘 익었다. 수육은 한 시간 정도 식힌 뒤에 자르면 모양이 잘 난다.
엊그제 만들어 둔 된장국이 남아 있어서, 콩나물과 추가 간만 더해서 한소끔 더 끓였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된장국은 충분히 맛있는 음식인데, 바로 만들지 않으니 맛이 천지차이다. 된장국에 간만 잘 맞추어 끓이면, 바로 끓인 된장국은 몇 번을 더 가져다 먹을 정도로 맛있는데, 묵은 된장국에 추가 간을 하니 딴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자연식물식 반찬보다 수육 몇 점이 더 맛있었다. 다행히 버섯구이와 물김치는 여전히 입에 맞았다. 새송이버섯구이는 버섯을 도톰하게 잘라서 격자로 칼집을 내고 앞뒤로 노릇하게 구우면 소금 간만 해도 풍미가 좋다. 자연식물식 92일째다. 자연식물식에는 익숙해져서 편안한데, 자연식물식 이외의 음식을 조금씩 추가하다 보니 추가하는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 더 자연식물식에 가깝게 유지해 보아야겠다.
* 사진 출처 : Unsplash의 blackiesh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