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쓸데없이 마음에서 불평하는 소리가 올라온다. 투덜투덜, 또 투덜투덜, 등등… 그런 마음의 소리에 기가 눌릴 지경이 될 때, 따뜻한 음식이 주는 위로가 있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에서 말하길, 마음의 비평가는 어린 자녀를 보호하고자, 아이가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과잉보호하는 부모의 과격한 목소리가 내면화되어 형성된다고 한다. 비평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스스로를 비평하고 비난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기분이 가라앉고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려던 찰나, 고구마 익는 냄새가 난다.
식사가 애매하게 꼬여버린 날이 있다. 아이들 학원 시간이 어중간하고, 아이들 간식 시간도 늦춰진 바람에 저녁을 차리기에도 건너뛰기에도 어정쩡한 날이다. 일단 냉장고에 있던 고구마를 쪘다. 한동안 에어프라이어에 주구장창 구워 먹는데 맛을 들였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찜기에 찌고 있다. 잘 씻은 고구마를, 큰 거는 반을 잘라서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200도에 35분만 돌리면 속까지 잘 익은 달콤한 군고구마가 된다. 찜기에 찌면 더 쉽고 빠르다. 찜통에 삼발이를 올리고, 삼발이에 넘실넘실 될 정도로 물을 붓는다. 삼발이에 고구마를 올려서 센 불에 20분 남짓 찌면 찐 고구마 완성이다. 익었는지 아닌지 미심쩍을 때에는 젓가락으로 한번 푹 찔러보면 된다. 젓가락이 부드럽게 잘 들어가면 고구마는 다 익은 거다. 찜기에 찌면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것보다는 덜 달지만 포슬포슬 부드러운 느낌에 어릴 때 먹던 고구마가 생각난다.
고구마 익은 냄새에, 고구마 한 개를 접시에 담았다. 뜨거울 때 껍질을 살살 벗겨가며 후후 불며 먹었다. 찐 고구마를 먹는데 어느덧 마음이 푸근하다. 아이들 저녁 대용으로 먹일 음식을 마련해서 마음이 편해진 걸까? 인간은 고민과 소화작용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데, 소화작용에 신경 쓰느라 이런저런 부산스런 생각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 걸까? 오늘 먹은 고구마를 농사지어 준 누군지도 모르는 농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 개 먹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 드는 고구마를 농사지은 분은 분명히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은 찐 고구마를 잘 먹지 않으니 맛탕을 만들어야겠다. 찐 고구마만 있으면 맛탕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다. 찐 고구마를 얼기설기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팬에 기름 넣고 굽다가 고구마가 노릇해지면 설탕과 소금, 올리고당(꿀이나 물엿도 괜찮다)을 넣고 잘 섞어주면 된다. 소금은 간이 되도록 약간만 넣고, 설탕과 올리고당은 동량으로 두어 큰 술 넣으면, 겉이 바삭바삭하다. 고구마가 아주 달면 설탕과 올리고당은 적게 넣고, 달지 않으면 조금 더 넣는 게 좋다.
자연식물식(채소, 과일,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 93일째다. 몸이 가벼워지면 운동을 절로 하게 된다는데, 요즘에는 운동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이른 아침의 산책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즐겁다. 이른 시간의 산책은 하루 종일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전에는 산자락의 잘 닦아진 길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했는데, 요즘에는 어느 정도 등산코스에 올랐다가 와야 만족스럽다. 먹는 양도 많고, 심지어 자연식물식에서 벗어난 음식도 상당히 먹고 있는데(오늘은 멸치볶음과 통조림 참치가 들어간 찌개), 몸무게는 그대로이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