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미소리 Oct 22. 2024

비 오는 날의 감자채전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새벽에 산책을 나갔을 때에도 빗방울이 한 방울씩 톡톡 떨어지더니 낮에는 제법 비가 오고, 저녁에도 후드득 비가 내리친다. 이런 날은 부침개가 좋다. 비 오는 날에 왜 부침개가 당기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 저녁 반찬으로 감자채전을 했다. 냉장고에서 꽤 큰 감자 세 개와 양파 한 개를 꺼냈다. 감자를 씻은 다음, 싹이 나고 검은 점이 생긴 부분을 싹 도려냈다. 얇은 채칼을 꺼내어 감자를 얇게 채쳤다. 양파도 얇고 길게 자른 다음 가운데를 한번 더 잘라서 작은 길이로 만들었다(이 정도 잘게 잘라야 부치기 쉽다). 감자와 양파를 섞고, 튀김가루 5큰술, 소금 반 작은 술을 넣어서 반죽했다. 반죽물은 따로 넣지 않았다. 감자와 양파에서 수분이 빠져나오니, 물은 넣지 않는다. 튀김가루는 재료를 엉기게 하는 용도로 넣는다. 잘 엉기지 않으면 물을 몇 스푼 추가하고, 잘 엉기면 튀김가루를 더 적게 넣으면 된다. 자연식물식 음식에 정제 기름은 포함되지 않지만, 부침개에 기름이 빠지면 섭섭하다. 기름을 적게 두르고 부침개를 하려는데, 실수로 자꾸만 기름을 많이 붓는 바람에 오늘의 부침개는 바삭바삭 아주 맛있게 되었다. 처음에 잠깐만 센 불로 굽고, 불을 낮춰서 약한 불에 오랫동안 구우면 부침개가 타지 않고 노릇하게 잘 구워진다. 천천히 구울수록 더 맛있어진다.


자투리 김치가 꽤 모여서 돼지고기 고추장찌개도 했는데, 김치가 적게 들어가는 대신, 양파와 콩나물로 채소를 더하고, 고추장, 간장, 설탕, 고추 약간으로 부족한 간을 더했다. 김장 김치가 없을 때에는 주로 김치찌개 대신 고추장찌개를 하는데, 의외로 고추장찌개의 맛이 김치찌개 보다 더 좋을 때가 많다. 돼지고기는 자연식물식 음식에 포함되지 않으니, 찌개에서 고기만 빼고 먹었다. 한동안 엄격한 자연식물식을 할 때에는 고기가 들어간 국물도 냄새가 싫어서 먹을 수 없었는데, (마음대로) 유연한 자연식물식을 하면서부터는 국물 정도는 불편함 없이 먹고 있다.



아침에 먹는 물김치는 역시나 자연식물식 음식으로 안성맞춤이다. 사과를 넣은 물김치가 맛있어서 이번에는 두 통이나 담갔는데 벌써 한 통은 끝났고, 더 삼삼하게 담갔던 두 번째 통을 개봉했다. 아주 삼삼하게 담갔지만, 냉장고에서 며칠 동안 숙성되면서 더 시원하고 맛있어져서 간이 부족한 느낌이 없다. 간식으로 고구마를 쪄서 뜨거운 보리차와 먹었더니, 커피와 케이크 부럽지 않다. 오후에 도심에 나간 김에 커피가 한 잔 당겼다. 비까지 오니,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생각나서 커피숍에 들르려다가 집에 돌아와서 찐 고구마에 뜨거운 보리차로 간식을 차렸다. 커피가 자연식물식 음식은 아니지만, 유연하게 치팅데이도 갖고 있으니, 어쩌다 사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 어쩌다 집에서 마시는 인스턴트커피 한 잔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자연식물식에 가깝게 유지하려 한다. 치팅데이로 정하고 커피를 마실 수는 있지만, 매일을 예외로 두면서, 이전처럼 매일 커피를 마시고, 매일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생활로 돌아갈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먹고 나면, 찐 고구마에 뜨거운 보리차도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자연식물식 105일 차다. 눈의 이물감이 사라져서 이제 렌즈를 낄 수 있다. 오랜만에 안경을 벗고 렌즈로 시력을 교정하여 세상을 바라보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작은 변화이지만 마음에 큰 즐거움이 찾아왔다. 새벽녘부터 비가 와서 등산로는 못 올라가고 편안한 산책로를 한참 동안 걸었다. 등산을 했을 때처럼 개운한 느낌은 아니지만 충분한 운동은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는 아침부터 입맛이 좋아서 아침도 잘 먹고 있다. 몸무게는 비슷하고 다른 컨디션도 모두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뚝딱 만드는 가지볶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