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 시간이 촉박해서, 냉장고 속 재료로 급하게 비빔밥을 만들었다. 귀갓길에 마트나 시장에 들를 시간도 부족한 데다 폭설까지 내리니 뭐를 사서 들고 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시금치가 있다. 양파도 넉넉히 있고, 열무도 한 봉지 있다. 생각하자면 베란다에 무도 두 개가 있으니 무나물을 해도 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물은 생략하고, 시금치와 양파를 꺼냈다. 냄비에 물을 끓이면서 시금치를 여러 번 씻었다. 뿌리 부분은 몇 번 더 씻고 뿌리를 끊어서 시금지 이파리를 분리했다. 끓는 물에 시금치를 넣고 1분 이내로 데쳤다. 시금치는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가 빼는 정도가 좋고, 물이 다시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시금치가 푹 물러버리고 만다. 데친 시금치를 채반에 밭쳐서 뜨거운 물을 버리고 흐르는 물에 시원하게 헹궜다. 겨울에는 수돗물이 아주 차서, 익은 채소를 식히기에 좋다. 시금치의 물기를 짜고(너무 꽉 짜버리면 식감이 좋지 않고, 물이 한두 방울 떨어질 정도로 수분을 남겨두어야 한다) 대파, 참기름, 소금 반 큰 술, 후추 약간을 넣고 무쳤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다섯 개 부쳤다. 몇 개는 반숙으로 하고, 몇 개는 뒤집어서 흰자는 완숙, 노른자만 반숙 상태로 두었다. 달걀을 부친 팬에 양파 두 개를 길쭉하게 잘라서 볶았다. 양파에 노릇한 기운이 돌면, 간장과 올리고당을 넣고 볶는다. 비빔밥에는 된장국이 어울리니 배추 된장국도 끓였다. 육수를 내지 못하고 급히 끓일 때에는 물에 다시마와 건새우를 같이 넣고 끓이면 좋다. 마침 배추도 있으니 (작은 사이즈의) 배추 겉잎을 9장 떼어서 씻고, 적당한 크기로 쭉쭉 잘라서 넣어 푹푹 끓였다. 5분 정도 끓이다가 된장 한 큰 술을 넣고 약불에서 15분 이상 더 끓이면 완성이다. 부족한 간은 멸치액젓으로 했다.
비빔밥 재료와 된장국, 몇 가지 김장김치에 장아찌까지 꺼내니 훌륭한 자연식물식 식탁이 차려졌다. 달걀과 된장국에 들어간 새우는 자연식물식 음식은 아니지만, 유연하게 하고 있으니 맛있게 먹었다. 자연식물식 141일째다. 이제는 자연식물식에 대한 이질감이 전혀 없이 아주 편하게 자연식물식을 주식으로 먹고 있다. 아침에는 배추물김치에 단감, 군고구마를 먹고, 점심은 오징어볶음과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밖에서 먹은 음식이라 짜고 자극적이었는데, 바깥음식은 사실 그 맛에 먹는다. 디저트로 커피와 초콜릿케이크를 먹었다. 요즘에는 커피와 케이크를 매우 자주 먹고 있으니 이제는 커피를 오랜만에 먹었다고 하기는 민망할 정도이고, 기분 좋은 날에 즐거운 마음으로 자주 디저트를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오늘 커피가 맛있어서 많은 양을 마셨더니 약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다시 당분간 커피를 자제해 볼 시점이다. 눈이 편안해서 렌즈를 잘 착용하고 있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