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베란다에 배추와 무가 많아서, 물김치를 담갔다. 더운 날씨에 배추가 그렇게 비싸더니 이제 배추가 풍성하게 나오고 있다. 사둔 지 일주일이 훌쩍 지나고 있는, 냉장고에 들어 있던 배추 두 포기를 먼저 꺼냈다. 한 포기는 겉잎만 떼어내서 된장국에 사용한 채로 남아 있고, 또 한 포기는 처음부터 알배기 배추를 샀다. 두 알배기 배추의 크기가 각각 중간 사이즈 배추만큼 크다. 얼마 전에 커다란 다라이를 하나 사 두었더니 김치 담글 때 유용하다. 김치를 자주 담그면서 점점 담그는 양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제는 전에 쓰던 작은 다라이로는 김치를 담글 수가 없다. 마침 김장철이라 커다란 다라이를 마트에서 팔고 있으니 이참에 한 개 들였다.
배추 두 개의 바깥쪽 잎을 떼어가면서 씻고 안쪽 잎은 대충 헹구기만 했다. 배추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두어 번 더 씻었다. 배추를 소금 네 큰 술에 절이면서 무를 손질했다. 냉장고에 몇 주째 있는 무 반 개를 나박하게 썰어서 배추에 섞어서 절이고, 당근 손질을 시작했다. 지인이 제주도에 사는 지인에게 많이 받았다면서 한 봉지 주었는데, 자잘하고 길쭉한 당근이 아주 귀엽다. 동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당근이 아니고, 미국에서나 봄직한 빼빼 마르고 긴 당근이다. 물에 여러 번 씻어내고 당근 단면의 모양을 살려서 동그랗게 잘랐다. 양이 많아서 물김치에 넣고도 남아서 샐러드용으로 잘라서 통에 담아 두었다. 당근까지 배추 절이는 곳에 섞어 절이면 재료 손질은 끝이다. 사실 물김치는 재료 손질만 하면 반 넘어 완성이다. 물을 넉넉히 잡고 찹쌀가루(멥쌀가루나 밀가루도 괜찮다) 한 큰 술을 넣어 보르르 끓인 뒤 식혀두고 식초와 설탕을 2:1의 비율로 섞어 양념을 만들었다. 매실청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서 한 두 큰 술 정도 싹싹 비워 넣었다. 김치통에 주재료를 넣고, 식혀둔 찹쌀풀, 그리고 양념을 넣은 뒤에 물을 붓고 섞으면 완성이다. 이번에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면 빠져나오는 채수를 다 넣어서 따로 소금은 넣지 않았다. 채소를 절이면 빠져나오는 채수가 아주 짜기 때문에 추가 간은 필요 없다. 양배추물김치를 할 때에는 채소 절이고 나온 물을 버렸었는데, 배추에서는 채수가 아주 많이 나와서 버리지 않고 사용했다.
늘 양배추로만 물김치를 담그다가 배추로 물김치를 담그기는 처음이다. 여름에는 배추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 시들한 배추가 나오더라도 평소 가격의 몇 배가 되니 별로 손이 가지 않아서 양배추를 주로 사용했다. 양배추 물김치가 아삭아삭 식감도 좋고 국물이 개운해서 여름과 가을 내내, 아침 식사로 아주 잘 먹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배추가 남아돌 지경이 되어서 처음으로 배추물김치를 했는데, 하룻밤 냉장고에 재웠다가 먹어보니 이건 또 신세계다. 아주 좋은 맛이다. 아이들은 호텔 뷔페에서 먹던 물김치 맛이라고 극찬을 한다. 재료는 정말 별거 들어간 게 없는데도 배추에서 나온 채수를 이용했고, 계속 채수가 빠져나오는지 국물 맛이 훌륭하다. 무와 당근도 연하고 달큰한 배추와 잘 어울린다. 배추의 맛이 순하니, 알싸한 무, 단단한 당근과 잘 어우러진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한다고 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삼겹살을 맛있게 굽는데, 내가 구우면 그 맛이 안 난다. 김치, 특히 삼삼한 물김치를 좋아하는 나는 물김치를 담그는 족족 맛이 있다. 물김치를 여러 번을 담갔는데, 한 번도 맛이 없던 적이 없고, 담글 때마다 점점 맛있어져서 이제 호텔 물김치 맛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자연식물식 140일째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다. 채소, 과일, 통곡물을 이용하여 적게 가공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맛까지 좋다. 그리고,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음식이 바뀌니 마음도 바뀌고 있다. 이전에 인스턴트를 즐길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니 경이롭다. 자연식물식으로 몸의 건강을 회복할 것만 기대했지, 마음의 변화까지는 기대도 못했는데, 마음의 평안이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