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불확실성 때문에 오는 두려움을 어떤 것이라도 부여잡으며 해결하고 싶은 시대이다. 돈이 되고 성공이 된다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1851년에 태어난 조던은 그릿(grit, 투지, 기개)을 실천하고 체화한 인물이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낙천성의 노력으로 쉽게 뛰어넘고,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인간의 위대함의 영역을 넓혀간다. 실제로 그는 그가 살던 당시에 발견된 어류 중 20%를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
나는 어류가 존재하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에 사는 생물을 어류라 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육지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묶어서 ‘육지류’라고 부르지 않는다. 육지에 사는 다양한 종을 파충류, 포유류, 곤충 등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지구의 삼분의 이가 바다이고 겨우 그의 절반이 육지인데, 육지에 사는 존재는 내가 사는 땅에 산다는 이유로 큰 의미를 부여하여 세분화하지만 물은 인류의 주거주지가 아니라고 아무 의심 없이 어류라고 통칭한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명료하게 반증한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반세기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커피를 만들어주었고, 자기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중략) 암울한 현실일 수도 있는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인생에 활력을 가득 불어넣고, 아버지가 크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평생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p.57-58)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1, 곰출판
물고기에 대해서만 그럴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 이단시하는 일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얼마나 많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난 동양인이고 한국인이니, 외국에서 살 때에도 동양인은 세분화하여 구분이 되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인도인 등으로… 그런데 서양인이나 아프리칸을 볼 때에는 그저 백인이고 흑인이지, 그들이 어디 계통인지, 유럽 어디에서 왔는지 아프리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별로 구분을 짓지 않았다. 사는 지역도 내가 사는 지역은 잘 알고 있으니 세분화한다. 서울에서도 어디에 사는지, 어느 동 중에서도 어느 지역인지 구분하여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남미 어느 나라에서 사는 이를 만난다면, 나라 이상의 지역까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고 알지도 모를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을 깊이 알려는 노력이 없는 것에 더해서 나와 다른 것을 하등한 것으로 판단하는 데서 인종차별주의도 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변질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자연에 흥미를 가지고 깊은 관찰을 하던 사람이었으며 자연이 주는 위로를 말없이 수용하던 그는, 조금씩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생명에 대한 존중을 넘어선다. 큰 지진으로 자신이 분류하던 물고기를 넣어둔 유리상자가 깨어진 날, 물고기 박제를 확인하러 달려가는 길에 만난, 자신의 학생들이 죽은 채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간과한다. 자신이 학장으로 있는 학교의 학생들, 어쩌면 자신이 한 번이라도 가르쳤을, 교정을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고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를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죽은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스치듯이 무심히 지나쳐버린다. 죽은 것 같아 보여도 흔들어 깨우면 숨이 붙어있는 학생을 얼마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열정이 깃든 어류 분류를 위한 물고기 박제의 안녕을 확인하는데 정신이 쏠려 있다.
그는 어류 분류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고,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은 손쉽게 처리하고, 공을 자기에게 돌리며 수많은 상과 명예와 부와 힘을 거머쥔 자가 된다. 그렇게 해서, 발견된 전체 어류의 오분의 일이 그의 연구단체에서 이룬 성과다. 그는 우생학으로 사람도 분류하기 시작한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류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 이상 생식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불임수술을 시행하는 것에 큰 목소리를 낸다. 그러한 분류가 옳다는 믿음에 대한 확신은 거의 신념적이다.
메리는 인형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지지해준다. 메리는 인형의 목에 걸린 색색 가지 구슬로 된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내가 만들었어!” 나는 자기 방에 혼자 앉아 조용히 나일론 실에 구슬을 하나하나 꿰며, 친구를 위한 깜짝 선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메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메리가 수용소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애나에게 영원히 은혜를 갚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답하는 그 행위에서 진짜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을. (p.224)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1, 곰출판
이것이 단지 소설인 줄 알고 재미나게 읽기 시작했는데, 뭔가 뒷골이 서늘한 느낌에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보니 허구가 아니고, 실화를 재구성한 이야기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살았던 사람이고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었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못마땅해했던 스탠퍼드 창립자인 스탠퍼드 부인은 누군가에게 독살당했다. 조던이 돌 사이로 숨어드는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한 독약과 같은 스트리크닌으로…. 조던이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붙들고 헌신하며 분류했던 어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류는 없다. 연어와 폐어와 소가 있다. 가장 유전자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 소가 아니라 연어다. 물속에 사는 생명체는 다양하고, 물속에는 어류로 통칭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나는 좋은 책을 두 가지 이유로 꼽는다. 기존의 사고를 흔드는 책, 그리고 아름다운 문체를 가진 책, 이렇게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책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책은 두 가지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한다. 역시 책복이 많은 사람인 나는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났다. 그리고 좋은 책을 공짜로 만났으니 나도 기쁜 마음으로 책을 소개한다.
처음 다윈을 읽을 때부터 마지막으로 우생학을 밀어붙일 때까지 어느 시점에서든 그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다시 현기증을 불러들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방금 자신의 형을 앗아간 세상 앞에서 상실감에 가득 차 떨고 있던 어린 소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세상 앞에서, 그 세상을 전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겁에 질린 무력한 아이로, 그 계층구조를 놓아버리는 것은 삶의 회오리바람을 풀어놓는 일, 딱정벌레와 매와 박테리아와 상어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주변, 그의 위에서 빙빙 돌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 -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p.206-207)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1,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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