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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에 앞선 존재감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눈을 바라보는 것

by 소미소리

나는 책복이 많은 사람이다. 책복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장소에서 살고 있을 터이다. 책을 무심코 골라 잡아도 좋은 책이 내 손에 들어온다. 얼마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구석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책장이 있었고 손을 뻗으면 책을 꺼낼 수 있었다. 오늘은 어떤 책과 인연이 닿을까 하고, 책 제목을 쭉 보다가, 김선호, 박우란의 <소극적인 아이도 당당하게 만드는 초등 자존감의 힘>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쓱 뽑아서 보기 시작하는데, 첫 페이지부터, 몰입이 된다. 독자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애쓴 책이다. 오랫동안 교사로 재직한 김선호 작가는 본인의 선한 가치관과 아이들과 부대끼는 오랜 시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들려준다.


아주 좋은 책을 만나면, 심장이 두근두근 설렌다. 좋은 책을 보면, 금세 알아보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억지스럽지 않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전해주는 책,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읽다가 좋은 구절을 필사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자존감이 생기길, 자기표현을 똑똑하게 하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친구들과는 재미나게 지내고, 어른들에게는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랄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면, 아이에게 칭찬을 백 번도 더 해줄 수 있고, 아이와 눈 마주침을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이에게 칭찬을 해줘도, 아이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지났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엄마아빠 눈에는 예쁘고 대단해 보여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가 알고 있다면, 부모의 칭찬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만다.


“우철아, 네가 계속 골키퍼를 하면서라도 같이 놀겠다고 선택한다면 그리고 그걸 정말 원한다면 선생님은 모르는 척 존중해줄 수 있어. 그런데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그건 정말 네가 원하는 게 아니야. 분노를 억누르면서까지 그 상태에 머무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그게 반복되면 점점 네 자신이 없어져버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학대하면 아무도 너를 존중해주지 않아. 너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사흘 정도 기다려주마. 그 이상은 안 된다.” (p.81)
김선호, 박우란, <소극적인 아이도 당당하게 만드는 초등 자존감의 힘>


내 아이의 자존감, 어떻게 키워줘야 할까? 초등 교사인 김선호 작가는 분명히 말한다. 그저 아이의 이름을 자주, 최대한 자주, 지속적으로 불러주라고… 자녀에게 ‘야, 너’ 등의 말로 부르기보다는 “00야”, “00아” 이렇게 불러주는 것이다. 하루만 그럴 것이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자주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이를 바라봐 주는 것이다. 아이가 무엇을 해냈거나 못해서가 아니고 그저 아이를 보고 또 보아주는 데서 아이의 존재감이 생긴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아이 스스로 만들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주양육자(부모든 할머니든 누구든)가 아이를 계속 보아주고 불러주어야, 아이의 존재감이 생긴다. 아이가 예쁜 짓을 하고 말을 잘 듣고 뭔가 성과를 냈을 때만 미소 지으며 아이를 바라보고 다정하게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반쪽도 되지 못하는 행위다. 아이가 성이 나고 짜증을 부리고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에도,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얼굴을 보아주어야 한다. 물론 이럴 때, 미소 지을 수는 없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다정한 미소만은 아니다. 함께 슬픔을 느끼고, 실컷 화가 나는 느낌을 나눌 시간도 필요하다. 필요 없는 감정이란 없다(잘못된 행동에 대한 지도는 필요하지만, 무시할 만한 감정은 없다.). 어떤 감정이든 충분히 느끼도록, 그리고 그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이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존재감을 생기고 그 위에 자존감이 생긴다. 존재감도 없는데, 허황되고 상황에 맞지 않는 칭찬으로 자존감을 쌓아 올릴 수는 없다. 존재감에 긍정적인 경험과 감정이 쌓일 때, 자존감이 형성된다. 무엇을 근사하게 해낸 아이가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소소하게 조금씩 성취감을 느낄 때 아이의 자존감의 단단해 진다. 어려운 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해도 자존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늘 60점 맞던 아이가 80점으로 성적이 오르고 그것에 성취감을 충분히 누리면 자존감에 긍정적이다. 반면, 한 문제 밖에 틀리지 않아서 일등을 한 아이도, 집에서 100점이 아니라고 혼이 날 수도 있다. 이 아이에게 일등은 자존감과 별개이다.


이 책은 부모가 당장 실천할 것을 보여준다. 당장 지금부터 내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주고, 조그만 성취를 이룰 기회를 주고,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나, 분노할 때에도 그 감정을 피하지 말고 함께 깊이 느끼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물론 부모가 잘못했을 때에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살아있는 교육이 된다. 완벽하고 부드럽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를 강요하면, 아이는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연습을 할 기회마저 박탈된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내 아이에게 올라온 감정이라면 충분히 느낄 기회를 허락하자. 나쁜 감정은 없다. 어떤 감정이든, 올라오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가 도울 수 있는 일이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라면, 곧 초등학생이 될 어린아이를 둔 부모라면, 오늘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눈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이의 존재감을 살려주자.


커버 사진 출처, Photo by Aziz Achar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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